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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A 살인사건
이누즈카 리히토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평점 :
촉법소년의 청소년 범죄를 다룬 사회파 미스터리는 제법 많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 <소년A 살인사건>은 출판사 책 소개를 보고 호기심이 동해서 읽었다. 14세 소년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과 사건 발생 20년 후 다크웹 경매 암시장에 올라온 당시 살해 현장을 담은 스너프 필름, 인터넷 자경단의 신상털기, 정의라는 이름으로 매도하는 집단 군중심리,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기묘한 현상, 마치 본격물을 보는 듯한 회심의 트릭과 반전... 게다가 신인 작가의 장편에게 수여하는 '제38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우수상' 수상이라는 화려한 타이틀까지...
이야기는 크게 두 축으로 흘러간다. 경시청 감찰계장 시라이시는 필름의 유출 경위를 조사하라는 상부 지시에 의해 당시 수사를 맡은 형사들의 내부 감찰에 들어간다. 카드 회사에서 추심 업무를 보는 젊은 여성 에리코는 한 불량 회원의 범법행위를 인터넷 자경단 사이트에 폭로하며 짜릿한 쾌감과 정의감을 맛본다. 시라이시 감찰계장이 필름의 유출 경위를 특정하고, 에리코가 포함된 자경단이 소년A의 신상 털기에 성공하면서 두 개의 축은 맞물리기 시작하고... 사태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20년 전 사건의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책을 펼치자마자 하루 만에 다 읽었다. 그만큼 몰입감, 가독성이 좋다. 이 사회파 미스터리가 던지는 화두는 분명하다. "살해당한 사람의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데, 살해한 사람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니. 그런 불공평은 용서할 수 없어." (279p.) 미숙한 미성년자가 우발적인 범행을 저질렀을 때, 피해자와 그 가족의 아픔과 고통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아니면 아직 앞날이 창창한 어린 가해자의 미래를 보호해 주어야 하는가? 법과 사회의 관점과 신념의 차이이다.
최근 그래서 우리나라도 촉법소년 폐지 여론이 뜨겁다. 미성년자의 소년 범죄는 갈수록 어려지고 흉포화한다. 더 이상 미성년이고 어린애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도 촉법소년의 나이를 만 14세에서 12세로 낮추는 법 개정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 물론 어린 범죄자의 양산, 부족한 소년원 시설과 인력 등 그 반대의 부작용도 존재한다. 정치인과 법조계가 심각하게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 책에서 인터넷 자경단은 스스로 사적 법의 집행자가 되어서 과거에 죗값을 치르고 (그래봤자 의료소년원 보호 조치 4년이지만) 멀쩡히 사회로 복귀한 소년A의 신상을 온 세상에 까발린다. 과연 이게 정의로운 일인가. 소년A가 참회하고 갱생했는지를 법 또는 전문가가 판단할 문제이지, 일개 개인이나 집단이 사적으로 판단하고 세상에 신분을 노출시킴으로써 사회적 매장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자경단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의의 탈을 쓴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또 다른 의미의 범죄 행위이다. 사람마다 정의에 대한 기준이나 관점, 가치관이 다를 수 있다.
어찌 됐건 이 책은 촉법소년으로 대표되는 소년법의 개정 필요성, 소년범 (특히 흉악범인 경우)의 갱생과 사회 복귀 여부, 군중 심리를 이용해 사적 공개 재판을 하는 인터넷 자경단의 윤리적 행위 등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재미와 작품성을 두루 갖춘 훌륭한 데뷔작이라 평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