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21.가을호 - 71호
계간 미스터리 편집부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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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호 특집 기사로, 전문가 세 분이서 침체된 한국 추리 문학의 원인과 나아갈 길을 찾고자 리부트하는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대담을 나눈다. 심도 있는 대화를 읽어보니 산적한 문제가 많은 듯하다. 추리 문학 태동기의 선구자 역할의 부재를 시작으로, 스타 작가의 부재, 앤솔로지의 병폐, 작가와 전문가의 양적 부재, 소재의 다양성 부족, 장편소설 시리즈의 부재, 거기에 추리 문학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과 엄격한 잣대, 종이책에 대한 거부감, 다양한 영상 매체의 증가 등등...1인 출판사가 홀로 고군분투하는 느낌. 한국 추리 문학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유익한 기사였다.

신인상 수상작 <꽃산담>은 제주도 곶자왈 도립공원에서 벌어진 유명 사설 트레이너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정통 추리물이다. 제주도의 특화된 영어 교육 도시를 배경으로, 피살자 주변에는 부잣집 사모님 등 사업적, 금전적으로 수많은 여성이 존재하고...작가는 그들의 추악한 이면을 끄집어내어 완성도 높은 추리소설을 선보인다. 특히, 범인이 밀실과 다름없는 살인 현장을 빠져나오는 방법이 이 단편의 묘수이다. 용의자 리스트에 여자 친구를 배제한 점, 배낭 속 물건을 ***로 옮긴 점, 목격자가 네 명인데 전화 걸러 사무실로 달려간 점등은 미세한 옥에 티이다.

또 다른 신인상 수상작인 <졸린 여자의 쇼크>는 환상 문학이다. 항상 졸리고 가수면 상태에서 환각을 보는 나, 왕따 당하고 첼로를 도둑맞은 음대 전공 알바생, 급우를 죽여 산에 파묻은 나는 현장을 다시 찾고...거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문장은 쉬우나 이해는 어렵다. 그래서 환상 문학인가? 논리를 중시하는 정통 추리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대척점에 있는 소설이다.

<공짜는 없다>는 죄를 짓고도 속죄하지 않고 자신의 처신과 안위만 생각한 이기적인 한 남자의 파멸 과정을 미스터리 기법으로 훌륭하게 보여준다. 문장력도 뛰어나고, 이야기도 흥미진진해서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었다. 수작이다. <버추얼 러브>는 외딴 별장에서의 비밀스러운 실험과 집단 살인을 다룬 SF 스릴러이다. 소재는 최첨단인데 전체적으로 플롯이 허술하다. <임시보호되었습니다>는 개를 소재로 한 일상 미스터리이다. 애견인이라면 공감할만한 내용이 아닐까... <무속인 살인사건>은 호러물로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밀실이 수반된 본격추리물로 절묘하게 마무리한다. 제법 긴장감 넘치고 수수께끼 풀이 방식도 뛰어나 아주 재밌게 읽었다.

두세 페이지 분량의 미니 픽션이 일곱 편 들어 있는데, 이런 기획과 시도는 처음 접하는지라 무척 신기하고 참신했다. 과연 이 짧은 분량에서 미스터리 특유의 긴장감과 반전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일부 단편에서는 어설픈 상황적 논리로 인한 허술한 전개도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복선 회수와 재치 있는 반전이 돋보인 <초능력이 생겼다>와 한 방향으로 우직하고 정밀하게 파고든 <고자질하는 시계>가 기억에 남는다.

영국 추리작가협회(CWA)에서 수여하는 상이 골든 대거상 하나인 줄 알았는데 이번 기회에 대거상도 열한 개 부문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중 우리나라 여성 작가가 대거상 번역상을 동아시아 최초로 수상했다고 하니 축하할 일이다. 수상작 <밤의 여행자들>의 저자인 윤고은 작가의 인터뷰를 흥미롭게 읽었다.

한새마 작가가 작가로서의 삶과 글쓰기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한다. 그녀에게는 <세 개의 방>이 있다. 미스터리의 세계로 인도해 준 전자책, 집필하는 스마트폰 그리고 각종 정보를 담은 개인 인터넷 비밀 카페가 그것이다. 아직 장편이 없는 것은 환경적인 요인이 크지 않을까. 일부 작가는 단편에서 장편으로 넘어가면서 좌절감을 맛본다고 하는데...시대상을 반영하는 범죄 소설에 매진하는 그녀의 행보를 지켜보도록 하자.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 카페의 오랜 회원으로서 지면에 해당 카페가 소개돼서 너무나 반갑다. 나의 독서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래서 매일 한 번쯤은 들여다보는 애정 어린 카페이다. 요즘은 조용하지만, 한때 일본 유명 인기작들이 국내 시장을 우후죽순격으로 폭격했을 때는 카페도 시끌벅적 대단했다. 글쓴이가 <용의자 X의 헌신>을 게이고 월드의 첫 작품으로 읽는다 하니 리뷰를 기다려 보자.

1층 추리 모텔에서 숨진 남자.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황세연 작가의 트릭의 재구성 <코로나 블루 살인사건>도 재밌게 읽었다. 역시 추리소설의 꽃은 트릭이다. 작가는 이런 꾸준한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오는 걸까.

2021년 가을호를 알차게 읽었다. 특집 대담 기사도 유익했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단편 읽는 즐거움을 따라올 수 없다. 가을호에는 신인상 두 작품을 필두로 미니픽션, 트릭의 재구성 포함 총 열네 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그야말로 단편의 진수성찬이다. 정말 배불리 먹었다. 개인적으로는, 정통 형사물 <꽃산담>, 한 남자의 파멸 과정을 미스터리 기법으로 그린 <공짜는 없다>, 본격 추리물 <무속인 살인사건>이 '베스트 3'이다. 특집 대담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장편 소설 시리즈'를 꾸준히 내놓을 정도의 대형 스타 작가가 어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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