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
쯔진천 지음, 박소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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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힘든 긴 밤> <무증거 범죄>로 국내 독자에게 친숙한 쯔진천 작가의 작품이다. 전작들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절대 부패 권력에 맞선 한 감찰관의 필생의 과업을 그린 <동트기 힘든 긴 밤>은 커다란 감동과 울림을 주었고, '중국판 용의자 X의 헌신'이라 불리는 <무증거 범죄>는 감추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 두 천재의 숨막히는 지략 대결이 볼만했다. 전작들이 심오한 주제에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다면 이 책은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호쾌한 액션에 슬랩스틱 유머가 가미된 범죄 스릴러물이다.

장이앙은 자신의 정적 라이벌인 저우웨이둥 상무부청장과 조카인 저우룽과의 불법 유착 관계를 조사하라는 성 공안청 가오둥 부청장의 임무를 부여받고 싼장커우 공안국 행정대대 부국장으로 부임한다.

싼장커우 토박이이자 거물 기업인인 저우룽은 동부신청 최대 산업단지 개발건을 낙찰받기 위해 최고 책임자인 관리위원회 주임 팡융과 접촉하고, 문화재 수집이 취미인 팡융이 고가의 편종 세트에 관심이 있음을 알게 된다.

금은방 강도를 전전하다 돈이 안되자 싼장커우로 넘어온 2인조 강도 팡차오와 류즈는 뒤탈이 없는 부패 고위 공무원 팡융의 집에 숨어들었다가 마침 찾아온 저우룽이 집에 돈을 쌓아놓고 산다는 말에 목표물을 변경한다.

저우룽과 저우웨이둥의 불법 유착 관계를 비밀리에 조사하는 장이앙, 편종 세트로 뇌물을 먹이려는 저우룽, 그런 저우룽의 저택을 급습하는 2인조 강도단... 일단 큰 축은 이렇게 세 갈래 방향이다. 하지만 이 세 길로부터 무수한 샛길이 생겨나고, 이야기는 가지에 가지를 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루정 전 부국장의 실종 사건을 시작으로 예젠 부국장 피살사건, 우연히 검거한 일급 범죄자를 통한 은밀한 내막, 편종 세트를 거래하려는 거물 밀거래상의 등장과 2인조 강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얼치기 2인조 사기단 등...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등장하고 나쁜 놈 위에 더 나쁜 놈이 설쳐댄다.

책 초반부는 수많은 등장인물과 익숙지 않은 중국 경찰 조직 체계와 그들 간의 파벌, 정치적 역학 관계가 조금은 혼란스럽게 다가오지만 주요 인물의 캐릭터와 역할, 이야기의 방향성이 잡히고서부터는 서서히 속도감이 붙는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와 다채로운 이야기들. 특히 저우룽 집단과 밀거래상 조직의 한 판 승부, 2인조 강도단과 얼치기 사기단의 물고 물리고 쫓고 쫓기는 일련의 에피소드가 실소를 자아내며 재미를 배가시킨다.

의욕만 앞서고 머리가 안 따라주는 부하 직원과 현장을 고집하는 열혈 여형사를 달래가며 과연 장이앙은 루정 실종사건과 예젠 피살사건의 해결 그리고 궁극적으로 저우룽의 비리를 파헤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그나저나 수사 중에 우연히 두 건의 일급 범죄자를 검거한 쾌거는 오롯이 실력인가, 아니면 완전히 운빨인가?

539쪽의 두툼한 책이 휙휙 넘어간다. 엎치락뒤치락하는 흥미로운 스토리에 때론 긴장감을 느끼다가도 때론 피식 실소하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다. 그만큼 재미와 오락성 그리고 속도감이 뛰어나다. 화면이 순간순간 바뀌며 빠른 스피드로 전개되는 웰메이드 범죄 오락 영화 한 편을 감상한 기분이다. 전작들을 통해 심오한 주제와 무거운 분위기의 책만 쓰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니 작가의 또 다른 면이 보인다. 그만큼 재미나게 잘 쓴 범죄 액션 스릴러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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