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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시체가 있었습니다 ㅣ 옛날이야기 × 본격 미스터리 트릭
아오야기 아이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알법한 옛날이야기에 본격 미스터리를 덧씌운 아오야기 아이토 작가의 작품으로, 2020 일본 미스터리 베스트 6개 랭킹을 휩쓴 화제작이다. 수록된 다섯 개의 단편에는 알리바이 트릭, 다잉 메시지, 도서 추리, 밀실 트릭, 후더닛 등 본격 추리의 핵심 요소가 총출동된다.
『엄지 동자의 부재 증명』
자유자재로 크기를 조절하는 요술 방망이의 신비한 효능을 이용한 특수 설정 미스터리. 우의정 대감의 건넛마을 숨겨놓은 자식의 교살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엄지 동자. 그는 자신의 부재 증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알리바이 트릭보다 범행 수법이 더 기발하다. 특수 설정 미스터리를 뛰어난 논리적 추리로 해결하는 수작 단편이다. 선한 엄지 동자를 탐욕스럽고 야비한 인물로 탈바꿈한 설정이 이채롭다.
『꽃 피우는 망자가 남긴 말』
사람은 물론 동물에게까지 늘 자상하고 친절한 할아버지. 급기야는 그 착한 마음씨로 마른 나무에 꽃을 피우게 하니 땅속에서는 금은보화가 쏟아지고 영주는 큰 상을 하사한다. 이런 할아버지가 살해당한다.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남긴 다잉 메시지로부터 의심 가는 인물들을 한 사람씩 심문하고... 이 모든 수사 과정을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는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과연 할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인가. 다잉 메시지의 씁쓸한 의미와 예상치 못한 범인의 정체 그리고 죽어가는 개의 회심의 복수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본격 추리 걸작 단편이다.
『도서 갚은 두루미』
아~ 고생해서 힘들게 읽었다. 은혜 갚은 두루미를 이렇게 비틀다니...두 번을 읽고, 메모지에 일일이 각 장을 요약해서 전후를 비교해 가며 간신히 줄거리를 이해했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이다. 보통 도서 추리는 범인이 초반에 등장하는데 이 단편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도치 서술, 즉, 서술의 순서가 의도적으로 바뀌어있다. 그것을 독자가 눈치 못 채게 교묘하게 연결시킨다. 작가는 여기에 또 하나의 회심의 트릭을 준비한다. 즉, 시간의 흐름과 인물의 정체라는 이중의 트릭을 넘어서야 사건의 진상이 보인다. 결코 만만한 작품이 아니다. 복잡하게 꼬아놓은 작가의 테크닉에 감탄이 나오는 단편이다.
『밀실 용궁』
수많은 바다 생물들이 인간 형태로 살아가는 바닷속 용궁을 배경으로 한 특수 설정 미스터리. 용궁 1층 겨울의 방에서 닭새우가 목에 다시마가 감긴 채 살해된다. 당시 겨울의 방은 안으로 빗장이 잠겨있고 창문은 산호로 뒤덮인, 출입 불가의 밀실 상태. 과연 범인은 누구이고 어디로 사라졌는가? 잔대 조개 거품이 갖는 신비한 마력과 궁극의 살해 트릭...밀실이 형성되는 무대 장치가 기발하다. 주인공인 육지인 어부를 통해 신비하고 환상적인 바닷속 동화 추리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먼바다의 도깨비섬』
옛날 옛적 평화롭던 도깨비섬에 모모타로와 짐승 세 마리가 습격을 하고... 도깨비 대부분이 목숨을 잃는다. 간신히 살아남는 도깨비들은 생명력을 유지해 이제는 열세 마리가 살아간다. 어느 날, 어린 도깨비 두 마리의 싸움을 촉매제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이어서 섬안의 모든 도깨비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가는 피의 살육이 벌어진다. 도깨비의 씨를 말리려는 범인은 누구인가? 도깨비섬의 전설을 배경으로 후더닛으로 진행되는 미스터리 단편이다. 도깨비 이름이 죄다 비슷해서 헷갈리지만 작가가 들려주는 대로 흥미롭게 읽다 보면 금세 결말에 다다른다. 마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유사한 포맷에 출생의 비밀, 시체 바꿔치기/오인 트릭 등 다양한 미스터리 요소가 볼만하다.
사흘에 걸쳐 아주 재밌게 읽었다. 수록된 다섯 개의 단편이 딱히 처지는 작품 없이 모두 뛰어난 재미와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리고 작품 수준도 높다. 옛날이야기에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정교하고 치밀한 트릭으로 수준 높고 재미난 본격 미스터리를 창출해낸 작가의 역량이 놀랍기만 하다. 인간성 통찰이라는 권선징악의 교훈적인 메시지는 덤이고... 괜히 2020년 각종 미스터리상을 휩쓴 게 아니다. 독자의 열화같은 요청으로 서양 전래 동화를 소재로 한 후속작 <빨간 망토, 여행길에서 시체를 만나다>도 출시되었다 하니 국내에도 조속히 만나보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