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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평점 :
참으로 독특한 스타일의 프랑스 스릴러이다. 작가는 '프랑스 범죄 문학의 마술사'라 불리는 장파트리크 망셰트. 1976년에 발표된 <웨스트코스트 블루스>는 작가의 대표작이자 누아로 걸작으로 불린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파리 대기업 임원인 주인공이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한 남자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작은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이후 두 명의 살인청부업자로부터 생명을 위협받는 두 번의 공격을 받고, 위기를 극복한 주인공은 배후를 밝혀내고 복수에 성공한다. 익히 접해본 여타 영미권 스릴러물과 별반 다를게 없는 줄거리지만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서술 방식은 무척이나 독특하고 독창적이다.
일단 누아르 걸작답게 문체가 간결하고 묘사가 사실적이다. 추천사 말대로 "군살이 조금도 없이 뼈만 발라낸 듯이 날렵하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군더더기는 커녕, 인물이나 배경 묘사도 지나칠 정도로 최소화한다. 그래서 날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받는다.
또 다른 특기할 점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예측 불가능한 전개이다. 두 명의 살인청부업자에게 불시의 공격을 받은 주인공은 경찰의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스스로 반격을 준비한다. 친구에게 총을 빌리고 휴게소에서의 목숨 건 일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 부상을 당해 깨어보니 알프스 산맥을 횡단하는 열차 안이고, 거기서도 부랑자에게 공격을 받아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다. 그래도 산속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은 알프스 산맥의 낯선 마을에서 장기간 숨어 지내며 회복에 집중하고, 자신을 찾아온 킬러와 마지막 일전을 불사한다.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예측불가하고 흥미진진한 전개의 연속이다.
총격전과 육탄전으로 피가 튀고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등 선혈이 낭자하지만, 한편으론 감미로운 재즈 선율이 흐르고 위스키 한 잔에 일상의 노곤함을 덜어내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거기에 명색이 전문 살인청부업자 두 명이 평범한 주인공 한 명을 처리하지 못해 쩔쩔매는 허당미나 그 과정에서 서로 책임을 미루며 티격태격 다투는 장면은 마치 덤앤더머를 보는 듯 실소를 자아낸다. 누아르 특유의 비장미와 블랙코미디가 공존하는 참으로 독특한 작품이다.
인상 깊은 장면은 두 군데이다. 경찰과 가족을 뒤로 하고 생사를 오가는 열한 달간의 사투를 마무리하고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귀가한 주인공이 아내에게 담담히 던지는 한 마디..."다녀왔어." 그리고 위스키 다섯 잔에 얼큰히 취한 채 제한속도를 오버한 최고 속도로 심야의 한적한 외곽순환도로를 질주하는 주인공. 차속에는 웨스트코스트풍 재즈 음악이 은은하게 흐른다. 마지막 장면과 연계되는 이 첫 씬은 사회로 복귀하려는 주인공의 의지와 열한 달간의 치열한 사투가 함께 오버랩되며 묘한 여운을 던져준다.
영미권 스릴러나 범죄 문학에 익숙해진 나에게 누아르 걸작이자 프랑스 스릴러의 고전이라 불리는 이 책과의 만남은 말그대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웨스트코스트 블루스>는 국내에 소개되는 작가의 첫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도 만나볼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