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염소가 웃는 순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즘 극장가를 보면 어린이와 가족을 상대로 한 헐리우드발 SF 판타지 블록버스터 영화가 제법 인기리에 상영된다. 이 책은 그러한 판타지 영화의 성인 버전쯤 될까? 거기에 오싹한 호러와 정교한 추리가 어우러진...그 유명한 '해리 포터 시리즈'에 빗대면, 이 책의 제목을 주인공 아화를 내세워 "아화와 노퍽관의 7대 불가사의" 좀 더 풀어쓰면, 아화와 그의 기숙사 친구들이 체험하는 노퍽관 일곱 개의 불가사의를 둘러싼 신비하고 공포스러운 모험담쯤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1889년, 이스트베스 경의 악마 소환 주술 의식과 대화재 사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아화와 기숙사 친구들이 노퍽관 지하에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의 주술이 행해졌던 방을 견학하면서 본 궤도에 오른다. 옛 주술 의식의 현장을 답사한 이후로 기숙사 친구 한 명이 사라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하고, 남은 사람들은 사라진 친구를 찾기 위한 신비하고 공포스러운 모험을 시작한다.
노퍽관 7대 불가사의라는 기숙사 괴담을 토대로 사건의 중심에 한 발짝씩 접근하지만 그때마다 책상에 잡아먹히고, 귀신에 잡혀가고, 거울에 빨려 들어가는 등 악마의 원념이 깃든 온갖 초자연 현상들로부터 친구들은 한 명씩 계속해서 희생되어 가고....과연 이 모든 것을 설계, 지휘하는 악마의 정체를 알아내 그 악령으로부터 친구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아화와 친구들이 악령과 맞서는 내내, 노퍽관 기숙사의 모든 구조가 시시각각 제멋대로의 형태로 변형되는 것이 마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환상적인 4차원 그래픽을 보는 듯하고, 시공간과 차원을 넘어 다른 차원의 나를 물끄러미 회상하며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SF 대작 <인터스텔라>가 떠오르기도 한다. 또한, 나무에 매달린 수많은 시체나 땅속에서 솟아나는 무수한 시체들의 팔, 아가리를 드러내며 집단으로 달려드는 시체의 무리를 볼 때면 이토 준지의 공포 만화를 보는 듯 섬뜩하기도 하다.
그렇게 친구들의 많은 희생 속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들이 모여서 드디어 밝혀내는 이 모든 공포스럽고 불가사의한 현상의 정체와 원인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인물...판타지 호러 모험소설로 흐르던 이야기에 추리소설로서의 빛이 발하는 순간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사건의 배경과 악령의 정체를 알아낸 주인공 아화는 마지막 힘을 짜내 악마의 중심부로 들어간다.
책을 다 읽으니 정교한 추리와 섬뜩한 호러가 어우러진 판타지 모험 영화 한 편을 감상한 느낌이다. 아화와 친구들 덕분에 현실 세계에서 접하지 못하는 신비하고 짜릿한 모험을 스펙터클하게 즐겼다. <13.67>, <망내인>, <S.T.E.P>등에서 컴퓨터 전공자답게 고도의 정교하고 논리적인 추리소설을 발표한 작가가 이런 초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호러물을 썼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예전 시마다 소지 작가가 "무한대의 재능을 가진 작가"라고 극찬했듯이 정말 찬호께이 작가의 다재다능한 재주는 끝이 없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