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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가 우는 섬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9년 9월
평점 :
송시우 작가는 예전 여름추리학교에서 얼핏 본 기억이 있다. 자그마한 체구에 안경 낀 얼굴, 그리고 조용히 강의를 경청하며 필기하는 진지한 모습... 이게 그녀를 기억하는 전부이다. 송 작가의 장편은 못 읽어봤지만 단편은 여러 편 읽었다. 그중 <아이의 뼈>, <누구의 돌>같은 작품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수작이다. 주로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사회성 짙은 미스터리물을 발표하는 여성 작가가 본격 추리물을 썼다니... 호기심이 동한다. 이 책을 집어든 가장 큰 이유이다.
경남 통영에서 뱃길로 한 시간 거리의 외진 섬 호죽도... 서로 알지 못하는 초대받은 여덟 명의 손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주최자, 돔 형태의 특이한 구조물, 외부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폭풍우 몰아치는 험한 날씨 그리고 기다란 죽창에 꽂혀 공중에 전시된 기이한 사체... 그야말로 클로즈드 서클의 본격 추리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다.
호죽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스토리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고 추리 과정은 지극히 논리적이다. 특히 살해 방법에 관한 다양한 가설을 물리적으로 검증하는 장면과 피리 소리로부터 암호를 풀어가는 과정은 자못 흥미롭다. 거기에 사건의 단초가 되는 40년 전 살인사건의 숨겨진 진상까지 덧붙여져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밝혀지는 두 건의 대나무의 특성을 이용한 살해 트릭은 만화에서 나올법한, 그 실행 및 성공 여부에 현실감은 의심스럽지만 제법 참신하고 기발하다. 작가가 트릭의 완성도에 많은 공을 들인 느낌...범행의 동기나 규모 면에서 조금 의아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어차피 본격 추리는 비현실성에 기초하니 넘어가기로 하고...그나저나 아이돌 댄스를 취미로 삼는 탐정역의 젊은 여성 물리학도가 꽤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여성 작가 특유의 감성적 문체나 곁가지 없이 본격 추리의 정석에 따라 힘있게 쓴 덕분에 몰입해서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40년 전 살인사건의 진상이 정말 그렇다면 사건의 최초 발견자 오배춘이 현장에서 보인 반응과 행동은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 이야기의 흐름상 그렇게 전개되어야 하는 것은 알겠지만서도... 제법 재미와 완성도를 잡은 이 책에서 유일한 옥에 티이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의 역량이 충분히 검증된 만큼 또 다른 본격물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