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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평점 :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우애 좋게 살아가는 가난한 두 형제 츠요시와 나오키. 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형 츠요시는 동생 나오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절도 행각을 저지른다. 범행 대상은 자신이 이삿짐센터에서 일할 때 봐두었던 혼자 사는 부자 할머니 댁. 하지만 단순히 돈만 훔치려는 계획이 어긋나 얼떨결에 할머니를 살해하고 강도살인죄로 15년형을 선고받는다.
이 이야기는 그러한 범죄자 형을 둔 동생 나오키가 겪는 인생을 그리고 있다. 단지 형이 흉악한 강도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란 이유로 나오키는 학교에서 그리고 졸업 후 사회에서 갖은 유무형의 차별과 편견의 시선에 시달린다. 알바 직장에서 해고되는 것을 시작으로 청춘의 꿈을 바친 좋아하는 음악을 접어야 하고, 미래를 약속한 사랑하는 여성과도 헤어져야 한다. 더 나아가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어두운 족쇄가 결혼한 아내와 사랑스러운 세살배기 어린 딸에게까지 그 여파가 몰아친다.
다달이 교도소에서 벚꽃 도장이 찍힌 형으로부터의 참회와 반성, 속죄의 안부 편지가 도착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계속되는 사회적 학대로 인해 자신을 위해 도둑질을 하다 살인자가 된 형에 대한 연민의 정이 원망과 증오로 바뀐다. 이제 형은 자신의 인생에서 걸림돌이 될 뿐이다. 과연 이 두 형제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만약 츠요시라면 나는 과연 범죄자 형을 무슨 시선으로 바라볼까. 비록 나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다 그렇게 됐다지만 계속해서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그러한 형의 존재를 어떤 마음으로 대할까... 또 하나는, 만약 내 주위에 범죄자 가족을 둔 츠요시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 역시 그를 어떻게 대할까. 단순히 그의 가족 문제라 치부할까 아니면 자기방어적면에서 그와의 거리감을 유지할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사실 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실제 나에게 범죄자 가족도 없고, 내 주변에 범죄자 가족을 둔 지인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역시 주변에 츠요시같은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삐딱한 색안경을 끼고 대하지 않을까. 반대로 생각하면, 그 당사자는 얼마나 억울한 차별과 고통에 시달릴까.... 사회적 편견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그동안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수많은 본격 및 사회파 추리물을 접해왔지만 이 책은 미스터리물은 아니다. 범죄자 가족으로 인해 일생을 편견과 차별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한 남자의 기구한 인생을 그린 휴먼 드라마이다. 그럼에도 재밌고 잘 읽힌다. 작가는 확실히 미스터리가 아니더라도 독자를 빨아들이며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텔링에 탁월한 재주가 있다.
책에 나오는 글귀 중에 인상적인 문구가 있다. "우리 회사에서 필요한 것은 인간성이 아니고 사회성이네..." 그만큼 사회성이 중요하다. 인간은 자신과 가족에게는 한없이 너그럽지만 타인에게는 냉혹하다. 그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타인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인간들의 자기본능적인 이중적 잣대이자 사회성일 것이다. 두 형제의 애절한 이야기를 한마디로 표현한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는 날이 올까?"라는 띠지속 문구가 그래서 더욱 뭉클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