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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클락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8년 8월
평점 :
<유리 망치>, <도깨비불의 집>,<자물쇠가 잠긴 방>에서 다양한 밀실 관련 범죄를 해결하며 멋진 케미를 보여준 방범 컨설턴트 에노모토 케이와 변호사 아오토 준코가 다시 뭉쳤다. 이번에는 전작들에 비해 더욱 복잡, 정교해진 트릭의 난도가 높은 네 건의 밀실 살인사건에 도전한다.
첫 단편 <완만한 자살>은 조직폭력배 사무실에서 벌어진, 자살을 위장한 권총 살인사건인데 트릭이 앙증맞고 귀엽다. 애교 수준이랄까. 짧은 단편으로, 앞으로 나올 나머지 중단편 세 편의 고난도 트릭을 맞이할 몸풀기 단계라고 보면 좋을 듯. 가볍게 읽기 좋다.
두 번째 단편 <거울나라의 살인>은 사방이 잠긴 미술관 내에서 심야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다. 당연히 범인은 내부에 있다. 과연 범인은 CCTV가 거미줄처럼 감시하는 1층 전시실의 미로를 어떻게 빠져나가 범행을 했을까. 그야말로 '빛의 밀실'이다. 하지만 일광 리플렉스용 편광렌즈, 오목과 볼록 거울, 홀로마스크 착시 현상, 순간조광유리, 스마트 스크린등 듣기에도 생소하고 난해한 광학에 관련한 전문 용어가 등장해 CCTV를 속이는 범행 과정부터 트릭이 밝혀지는 결말까지 당최 이해가 어렵다. 과연 역자분은 이 단편을 번역하며 제대로 내용을 이해했는지 궁금하다. 일전에 <자물쇠가 잠긴 방>도 등장하는 다양한 열쇠와 자물쇠의 특수한 메커니즘을 글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 해 일드를 찾아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 단편 역시 드라마로 먼저 제작되었다고 하니 눈으로 트릭의 실체를 확인해야겠다.
표제작 <미스터리 클락>은 트릭의 최상급 난도를 자랑한다. 산속의 외딴 산장에서 유명 미스터리 작가인 안주인이 손님들을 초대해 놓고는 자신의 서재에서 독살당한다. 현관에는 방범 장치가, 창문은 모두 잠긴 그야말로 밀실 상태. 사건 발생 후 내부자가 모두 모여 서로를 의심해 가며 다양한 추론으로 진범에 근접해가는 중반부까지는 짜릿한 서스펜스까지 느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다양한 시계들의 향연이 펼쳐지면서 이야기는 어려워진다. '시간의 밀실'이다. 초정밀 과학이 응축된 시계 공학만큼이나 이렇게 정교하고 복잡한 트릭이 숨어있다니...그야말로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출판사에서 독자의 이해를 돕게끔 친절히 도표와 그림까지 제공했지만 한 번 읽고는 도저히 머릿속으로 정립이 안된다. 이 역시 영상이 있으면 도움을 받아야 할 듯...이런 트릭을 고안한 작가의 노력과 재주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마지막 단편 <콜로서스의 갈고리발톱>은 보기 드문 해양 밀실사건이다. 주변에서는 실험선이, 바닷속에서는 ROV(원격조정 무인탐사기)와 잠수부가 돌아다니는 가운데 바다 위 고무보트에서 낚시하던 한 남자가 피살된다. 거대한 굉음, 무수한 거품과 함께 전복된 고무보트에서 살해된 남자의 몸에는 심해 물고기의 이빨자국이 있고... 과연 범인이 행한 궁극의 트릭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소리의 밀실'이다. 참신한 설정에 수중 탐사 관련 해양 지식이 어우러져 네 단편 중 가장 재밌게 읽었다.
이 책에서 범인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조금만 읽어도 범인은 유추 가능하며 그것도 어려우면 에노모토가 중반부에 친절히 알려준다. 문제는 그들이 행한 회심의 트릭 그리고 그것을 뛰어난 전문 지식과 날카로운 추리로 풀어내는 에노모토의 활약상이다. 과연 기시 유스케 작가는 짧은 본격 미스터리 단편 하나 쓰는데도 관련 전문지식을 통달해 완성도 높은 트릭을 보여준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기존의 정형화된 밀실의 정의가 현대에 이르러 좀 더 확대, 재생산되는 느낌이다. 기존의 밀실이란 출입이 불가능한 장소를 뜻했는데, 작가의 밀실은 사방이 뻥 뚫린 바다 한가운데라도 지켜보는 눈이 있어 접근이 불가능하다면 그 역시 나름의 밀실이 된다는 논리이다. 작품의 이해도를 떠나 오랜만에 고난도의 트릭이 춤을 추는 기시 유스케 표 본격 미스터리를 감상할 수 있어 무척 흡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