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시베리아 - 시베리아 아이를 만나러 가는 특별한 여행
리처드 와이릭 지음, 이수영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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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말하는 동쪽 한 귀퉁이의 미개한 나라의 이야기에 (그곳에 살고 있는 나는) 책을 읽으며 내내 불편했다. <너의 시베리아>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시베리아는 무법천지의, 마약쟁이의, 가난의 얼음투성이 척박한 땅이다. 시베리아를 고향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겐 불편한 현실이다.
 

아니다. 이젠 아멜리아를 입양하러 가는 마음으로 다시 책을 읽는다. 자신의 새 아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소중한 아이를 잉태한 시베리아라는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 이젠 아무리 가지려 한 대도 차가운 공기, 눈, 그곳만의 태양이 만들어낸 풍경을 아멜리아는 더는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멜리아는 더는 마약쟁이의 아이를 낳지 않아도, 끔찍한 사건 사고를 겪지 않아도 될 터다. 아이를 특히 딸 아이를 가진 아빠의 눈에는 현실이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해도, 훨씬 더 과장해서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게 이 책을 읽으며 불편했던 것의 원인이다.
 

시베리아 여행기는 많다. 사진집도 있고, 그곳의 곰을 비롯한 야생의 것을 다룬 기행문도 많다. 그리고 내가 가야 할 곳의 정보만을 따진다면 책은 인터넷만 못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하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받아 안아야 할 어린 생명을 대하는 느낌으로 시베리아를 겪고 쓴 책이다. 시베리아는 내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 곳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조금은 다른 여행을 생각해본다. 그곳에 할아버지나 삼촌, 어쩌면 어린 생명을 만나러 가는 여행을 그려본다. 그런 내게 시베리아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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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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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건이 아니면 알려지지도,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 큰 사건들은 생활고에 지친 주부, 쪽방촌의 노인, 공장에 다니던 20대 여성 중 누군가가 큰일을 당했을 때다. 어느 사장이 몇억을 해먹었고, 어느 장관이 리베이트에 연루되었다는 둥의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겪는 큰일과 사뭇 다르다.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현직 기자들이 위장취업이라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겪고 쓴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한 달 후면 다시 기자라는 정규직에 있을 사람의 노동과 오늘 저녁의 식비와 전기세, 방값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노동은 질적으로 다르다. 그저 몸이 힘들고, 억울하고, 안쓰러운 마음은 가난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하는 나도 가난이 뭔지 모른다. 그런 내게 적어도 최저생계비, 우리 사회의 모순을 생각하게 한 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식당에 가면 유독 한번에 시키지 않고 하나 가져오면 다음 거 주문하고, 다음 거 주문하면 또 다음 거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안해서라도 그렇게 못하는 내게 그들은 “내가 내는 밥값에 서비스 가격이 들어있는 거라고”라고 말한다. 그 서비스 가격은 아줌마가 아니라, 사장님이 가져가는 건데 말이다. 시급 4000원의 아줌마의 최저생계비는 사회가 챙겨야 하는 거란다. 그 사회라는 게 우린인데 말이다. 띠지 카피처럼 나는 첫 번째 글부터 “울면서 읽었다.” 식당 일을 하시던,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신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약은 약국에 있는데, “우리 아들 누구 꺼”라고 물으며 즐거워하신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마트에선 동생들을 보았고, 마석의 가구 공장과 난로 공장에서는 삼촌과 아버지들을 만났다. 이렇게 일반화할 수 있는 건, 이 책을 쓴 기자라고 하더라고 그 자리에 서면 누구나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궁을 들어내는 한이 있어도 시급 4천 원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억울하고 분한데 고향에 있을 가족을 생각하며 참아야 하고, 나와 같은 처지의 반장을 생각하며 야근을 해야 하는 현실은 그대로다. 그리고 다들 먹고 살기 바빠 이런 현실을 외면하는 현실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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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의 수학이란 무엇인가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지음, 오채환 옮김 / 궁리 / 2009년 10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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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3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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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초 - 순식간에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는 결정적 행동의 비밀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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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시 리처드 와이즈먼은 깔금하다. 이 사람이야말로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 줄 아는 59초 기술의 달인이다. ‘괴짜심리학’에서 보여줬던 그 놀라운 실험들이 가득하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얼마나 생각을 할까? 그야말로 1분도 안 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이 (그 사람이 판단한) 나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다. 이 상황에서 난 섣부르게 판단하는 상대를 탓해야 할까? 아니면 1분 안에 결정적 행동을 하지 못한 나를 탓해야 할까? 만약 무언가를 바꿔야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이라면 ‘59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데는 59초가 더 걸린다. 승부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59초’일 것이다.

면접관들은 말한다. 지원자들의 ‘업무 능력’ ‘자질’을 본다고. 그런데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그 짧은 시간 안에 능력이나 자질을 파악할 수 있을까? 의심해볼만한 일이다. 와이즈먼은 말한다. 다 거짓말이라고. 면접관들은 자신에 대한 칭찬, 회사에 대한 관심, 자신과의 공통 관심사에 대한 시시한 이야기를 통해 지원자를 파악한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조금만 의심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와이즈먼은 이런 사실을 특유의 괴짜 실험으로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59초 코치’라는 코너를 통해 결정적 행동에 대한 지침을 알려준다. 면접관에게 호감을 사는 방법이라든지, 장고 끝에 악수를 둘 수밖에 없는 기획안을 단 번에 끝내는 방법이라든지, 상대를 단번에 설득하는 방법과 같은 것들을 세세하게 알려준다. 물론 자신과 타인의 유명한 실험이 그 근거가 된다.

심지어 소개팅 자리에서 엉뚱한 질문을 던져 호감을 산다거나, 지갑 속에 아이 사진을 넣어두면 잃어버려도 빨리 찾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호기심과 재미 가득한 이야기들은 읽으면서는 내가 직접 그런 실험을 해보고 싶은 호기심마저 들었다.

단 1합 만으로 결판이 나는 세상. 그건 고수들의 문제야라고 생각해버린다면 언제까지 고수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 앞에 섰을 때 ‘59초’라는 생각을 잊어버리지 말자. 그건 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상대의 시간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니까. 여하튼 순식간에 판세를 결정짓는 결정적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 결정적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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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분도 아니다. 59초
    from 나루터 2010-04-28 10:59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경제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인간이 있을 수 있는 걸까?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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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완득이의 비명을 곧이곧대로 들어선 안 된다. 장애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를 둔 문제아 완득이의 진면목을 파고드는 똥주의 활약을 기대하시라.

틀림없이 주인공은 완득이다. 그러나 자꾸만 똥주에게 눈길이 간다. 언제나 욕을 입에 달고 다니고, 학생들의 간식거리를 압수해 챙기고, 문제아 완득이를 괴롭힐 궁리만 하는 똥주가 정말 선생이냐고?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가라고, 학교에선 그저 내 말만 들으면 된다고 하는 권위적인 선생에 비교하면 백번 천번 제대로 된 선생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엔 요즘 아이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방황하던 내 어린 시절을 다시 돌아다보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절부터 시작된 “요즘 아이들은 문제다”라는 이야기를 그저 입버릇처럼 되내며 의식없이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고민없는 어른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 책이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민하는 자의 특권은 방황이다”라는 괴테의 말을. 동네 골목길을 걸어가는 반항기 잔뜩 어린 아이들을 본다면 이젠 “저 녀석이 완득이구나”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의 속 시원함이 내가 사는 이 땅 어딘가에서도 이뤄지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서 세월이 느껴진다면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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