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여행을 권함
김한민 지음 / 민음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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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것들은 감히 심중을 헤아리거나 예측할 수 없음. 그것이 노인들의 매력이다. 페루의 마누Manu 정글에서 만난 마치젱가Machiguenga 부족의 노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분에게도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말수가 너무 적어 일찌감치 포기하고, 대신 낚시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데 낚시 운도 따르지 않아 고기가 좀처럼 잡히질 않았다. 한참 후에 왜 그런지 물어보니 원래 낮에는 입질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제야 말씀해 주시냐, 진작 알았으면 이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았을 텐데, 하고 물을 순 없었다. 노인이 촬영진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어쨌든 우린 낙담해 버렸다. 이 먼 곳까지 와서 뙤약볕 아래 몇 시간이나 할애하고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으니. 작별 인사나 하려고 일어섰다. 대답이 돌아올 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럼 잘 계시고, 건강하세요."라고 말하고 돌아서려는데, 노인이 나를 올려다보며 한마디 던졌다. 그때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가 깊고 정이 듬뿍 담긴 눈빛을 반짝이며 딱 한마디.

"언제 또 올 건데?"

그 목소리엔 도시인들에게 익숙한 '언제 한번 보자.'나 '볼 수 있으면 보자.' 식의 무성의한 빈말과는 차원이 다른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당황한 나는 "아, 네, 가능한 한 빨리 와야죠......." 라며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런데 내 대답을 듣고 노인의 만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가슴이 아려왔다. 엄청난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았다. 노인의 그 한마디는 '아무것도 못 건졌잖아, 시간만 낭비했어.'라는 건방진 생각이나 품었던 내게,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서 뭐가 중요한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목적에만 집착하고 있던 내게 주어진 과분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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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colepsy 2016-02-22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3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