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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 2005년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이장욱 지음 / 문학수첩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식장은 이틀 내내 한산했다. 한 인간이 지상에서 사라졌는데도,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남자는 약간의 비감에 젖어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것이 죽음인데도, 이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수만큼 무수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것이 죽음인데도,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흔한 것 중의 하나인 것이다. 남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병원 장례식장에는 빈 방이 거의 없었다. 안내 전광판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름이 추가되었다. 방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다. 어떤 방에는 초저녁부터 고스톱 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방 한켠에 모여 있었다. 쓰리고에 피박을 외치는 중년 사내들의 고함 소리가 간헐적으로 복도에 울렸다. 웃음소리가 뒤따라 몰려나왔다. 남자는 약간의 분노를 느꼈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사람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잠시 병원에 들러, 간단한 조문을 마친 후, 고스톱 판을 벌인 뒤, 다시 생을 계속할 것이다. 몇 번쯤 혀를 차줄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의례적인 인사 같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바라보던 거리와 내가 왕래하던 건물들과 내가 잠자던 방들 역시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어떤 시간도, 어떤 공간도, 전혀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남자의 비감은 깊어졌다.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제 지상에서 사라져버린 여자가, 불현듯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