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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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들은 대체로 매력적이다. 그들의 외모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아름다움을 모르는 나는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어떤 것을 보면 슬퍼진다. 서글퍼지는 거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눈물이 저절로 똑, 하니 떨어질 것만 같다.

그런데 그녀의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들은 아름답진 않다. 되려 혐오감을 주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뙤록뙤록 살쪄있기도 하고 꼽추이기도 하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 건 내가 그다지 꼼꼼히 정독하는 성실한 독자가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어쨌든 그녀들은 모두 다 세상의 변방에 외떨어져 있는 듯하다. 대체 있을 법하지 않은 인물들이지만, 가만가만 생각해보면 있을 법도 하다.

그런 인물들이 자기 식대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하는 데서 매력을 느낀다. 어찌 어찌하여 알아주는 삶을 살아가진 못하더라도, 구질구질한 생을 살아가더라도 그들의 인생에서는 적어도 무기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살아있음 그 자체를 부정하려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거다. 그 생기,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도 활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묘한 기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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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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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첫 작품집 <여수의 사랑>에 실린 단편 '야간열차'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무력한 젊음이 헐거워져 견디지 못할 때---' 나 역시 새파랗게 젊을 때라고 하는 이 이십대를 겨우 맞이했다. 그리고 힘겹게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시기가 버겁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이 시기가, 모조리 다 불확실해 보이는 이 시가가, 어떤 시작이든 감행할 수 있는 좋은 때가 아니겠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더라.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안다고 그대로 밀고 나갈 만한 환경은 아득해만 보이는 게 현실이다.

무턱대고 유치하고, 어설픈 감정 하나로 무작정 앞질러 보려고 해도, 십대와는 다르게 책임감이랄지 의무 따위가 마음 한구석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어떤 게 현실이고 사람살이인 건지,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문득문득 마주치게 되는 때가 이십대가 아닌가 싶다.

나에게 왜곡되고 헛된 것만 가르치려는 사람에게 적대감 섞인 우월감을 가지고 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여서 절망감을 느낀다. 나에게도 내가 원하기만 하면 다 되는 그런 환경을 가지고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나를 뒷받침해줄 그런 휘황찬란한 배경이, 내가 가려는 길을 가로막지 않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이다.

한강의 첫 소설집을 읽으면서 나의 이 헐거운 젊음을 생각한다. 이게 내 앞에 주어진 삶이라면 어떻게든 맞서 보리라는 생각도 한다. 내게 주어지지 않은 그 조건에 부질없는 볼멘소리도 잠잠해진다. 그녀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슬픔이나 고난이나 아픔이나 절망을 견뎌보려고 하거나 내팽개치려는 양 말이다. 어떤 바람직한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고 허방만 짚는 그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고 싶다. 그들이 하나같이 미래를 믿지 못하고 현실과 과거를 버거워하는 것도 실은 나에게는 위안을 준다.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이 있구나, 하고.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우울해지고 침잠해지는 마음을 주시한다. 그리고 신발 끈을 꽉 조이는 듯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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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
정채봉 지음, 김덕기 그림 / 샘터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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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동화작가라면 오로지 정채봉이다. 하지만 그의 동화는 읽어본 적도 없고 성인동화 장르를 개척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의 작품 '오세암'을 각색해 만든 동명의 영화 '오세암'만 봤을 뿐이다.) 다만 내 고향 가까이에서 태어난 작가에게서 무턱대고 애정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물을 사랑하게 되면 알려고 한다더니, 그 말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나 보다. 정서적인 유대감을 느끼면서도 그 감정은 매번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의 얘기를 들을 때만 느꼈던 셈이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어떻든 그의 잠언집을 읽는다. 우선 디자인이 세련되어서 끌렸었지만 제목을 보고서 의아해했다. 뜬금없이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라니... 시작도 없이 대뜸 걱정할 틈이 없다는 새라니... 그만큼 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인가? 어떻든 책을 펼쳤다. 역시나 책 디자인이 너무 예뻤다. 서문을 대신한 글인지 몰라도 '바람에 몸을 씻는 풀잎처럼/ 파도에 몸을 씻는 모래알처럼/ 당신의 맑은 눈동자 속에 나를 헹구고 싶다'는 글귀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연정을 품고있는 지금 이 때에 꼭 써먹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간단 간단한 얘기들이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동화를 쓰는 작가가, 그것도 간암으로 작고하신 작가의 말을 듣는 것은 모종의 아련함을 느끼게 한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한다는 좋은 말, 미사여구의 나열이 늘 듣기 좋은 것이 아니듯이 나는 약간은 식상해했다. 그가 들려주는 얘기 중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말을 수 백번 들어도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어찌해도 좋은 말은 좋은 말이라고 인식을 하게 한다. 그리고 간간이 들어있는 김덕기의 그림은 매력적이다. 따스하게 조곤조곤 말하는 정채봉의 말의 배경을 해주는 그림은 너무 아기자기하다.(근데 하나같이 그림의 이름이 없다. 무제인가? 갑자기 든 생각...)

내가 그에게 무턱대고 친밀감을 가지는 것이 편협한 편가르기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니라, 고향을 떠나온 내가 가지는 인지상정에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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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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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나는 문학평론가 도정일의 말처럼 '산뜻하고 해맑은, 성장소설 이상의 성장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성장소설은 나의 유년의 한때를 떠올리게 된다. 나에게 있어 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은 기쁜 일이면서도 그 동시에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일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므로, 감히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임에 기억을 윤색하기만 했지만, 그래도 상처라고 말하는 것조차 너무 가벼운 느낌이어서 주저하게 되는 내가, 어른이 되는 것을 가로막을 만한 커다란 좌절이 있었기 때문일 테다. 여전히 성인답지 못한 내가 평생을 두고 가슴 절절해야할지도 모른다.

동구란 아이가 어른스럽게 일찍이 철이 든 모습은 애잔했다. 고 어린것이 어른스러운 모습은 전혀 비현실적이기지 않았다. 늦자라는 아이가 있듯이, 반대로 웃자라는 아이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일찍 철드는 것이 자신을 버텨내기 위한 안간힘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분명 알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철 든 체하면서 세상을 견뎌야하는 내가 그랬기 때문일까? 동구를 대견해하기보다는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순박하고 여리고 착한 아이,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부조리해서 충분히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그 사람들에게서 지금의 나, 과거의 나를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닐 거다. 거울을 보는 것 마냥 지극히 감상으로만 읽어서 나는 작품을 읽는 내내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동구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릴 때, 동생 영주가 장난감을 던져 아버지를 제지했을 때, 어머니가 영주를 남편의 위협으로부터 감싸며 하는 말 '영주한테 주먹질하면 내가 당신 죽여버릴 거야.' '정말 죽여버릴 거야. 당신 잠만 들면 죽일 수 있어.'하는 데서는 죽은 듯이 살아온 내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찍어내야만 했다. 그리고 난독증인 동구를 따스하게 감싸며 정을 주는 박영은 선생님이 쓴 편지를 동구가 읽어 내려가는 장면에서, 동생 영주가 죽는 장면, 아버지가 벽에 머리를 박으며 꺼이꺼이 우는 장면, 동구가 할머니에게 노루너미에 가서 살자고 말하는 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열살 아이가 말하는 그것이라고 보기에는 좀 과한 묘사와 표현은 눈에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사소한 일에도 트집을 잡아가며 유난을 떨며 비판을 하지만, 나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에는 무작정 빠져들며 이성을 누그러뜨린다. 자기 곁을 어쩔 수 없이 떠난 영주과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와 할머니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동구의 모습을 나는 계속 떠올리고만 있다. 나도 이제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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