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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강의 첫 작품집 <여수의 사랑>에 실린 단편 '야간열차'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무력한 젊음이 헐거워져 견디지 못할 때---' 나 역시 새파랗게 젊을 때라고 하는 이 이십대를 겨우 맞이했다. 그리고 힘겹게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시기가 버겁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이 시기가, 모조리 다 불확실해 보이는 이 시가가, 어떤 시작이든 감행할 수 있는 좋은 때가 아니겠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더라.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안다고 그대로 밀고 나갈 만한 환경은 아득해만 보이는 게 현실이다.
무턱대고 유치하고, 어설픈 감정 하나로 무작정 앞질러 보려고 해도, 십대와는 다르게 책임감이랄지 의무 따위가 마음 한구석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어떤 게 현실이고 사람살이인 건지,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문득문득 마주치게 되는 때가 이십대가 아닌가 싶다.
나에게 왜곡되고 헛된 것만 가르치려는 사람에게 적대감 섞인 우월감을 가지고 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여서 절망감을 느낀다. 나에게도 내가 원하기만 하면 다 되는 그런 환경을 가지고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나를 뒷받침해줄 그런 휘황찬란한 배경이, 내가 가려는 길을 가로막지 않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이다.
한강의 첫 소설집을 읽으면서 나의 이 헐거운 젊음을 생각한다. 이게 내 앞에 주어진 삶이라면 어떻게든 맞서 보리라는 생각도 한다. 내게 주어지지 않은 그 조건에 부질없는 볼멘소리도 잠잠해진다. 그녀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슬픔이나 고난이나 아픔이나 절망을 견뎌보려고 하거나 내팽개치려는 양 말이다. 어떤 바람직한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고 허방만 짚는 그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고 싶다. 그들이 하나같이 미래를 믿지 못하고 현실과 과거를 버거워하는 것도 실은 나에게는 위안을 준다.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이 있구나, 하고.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우울해지고 침잠해지는 마음을 주시한다. 그리고 신발 끈을 꽉 조이는 듯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