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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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약속은 단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것.'


2016년 출간된 <편의점 인간>은 일본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되고 한국 출간 후 시대의 초상을 담아냈다는 극찬을 받으며 단숨에 베셀에 오른 작품이라고 한다.


<편의점 인간>을 읽어보았다면 <지구별 인간>을 좀더 이해하기 쉬웠을까?
읽는 내내 책을 덮고 싶을만큼 기괴하고 이 작품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는데 작가는 이 부분에서 허를 찌른다.
'정상'과 '평범'의 범위는 누가 정하는 건데?


언어적 폭력과 신체적 폭력을 휘두르는 가족에게서 감정쓰레기통 취급을 당하며 오랜 시간 학대를 받아온 나쓰키
모든 것은 자신이 못난 탓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나쓰키는 학원 선생으로부터 성폭행까지 당하지만 주변 누구에게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가엾은 열한 살 소녀이다.


나쓰키는 혹독한 현실세계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었는지자신을 '포하피핀포보피아별'에서 온 마법 소녀라 여기며 유체이탈 법까지 써가며 지구인간과 자신을 분리해버린다.
그리고 나쓰키의 이야기를 유일하게 믿어주는 사촌 유우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인간공장?의 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 엄청난 제안을 하고 유우는 이를 받아들이는데..


​이제까지 만나본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독특한 작품이다.
시작부터 일반 사람들이 정해놓은 정상범주를 보란듯이 벗어나더니 충격적인 결말에서는 입을 다물수가 없다.


사회적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아웃사이더들의 충격적인 반란기.


* 이 도서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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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부수는 말 -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이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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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가슴에 남는 말들이 있다.
가정에서 자라나면서, 학교에 다니면서, 사회구성원이 되면서, 결혼하고 워킹맘으로, 주부로 살아가면서...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색깔만 흐려졌을 뿐 여전히 곱씹어도 이해는 되지 않는 말들.
책을 읽으며 과거의 크고 작은 상처들이 일부분 떠올랐고 그 중 하나의 에피소드를 리뷰에 녹여보려고 했다.
그러나 곧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나는..나는 권력의 언어와 관계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책에서는 21개의 화두를 던지고 그 안에 담긴 권력의 언어를 찾아낸다.
노동, 인권, 퀴어, 여성, 동물, 권력 등 듣기만 해도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한 화두도 있었지만,(물론 이 부분도 읽어보니 역시나 나의 사고가 우물 안 개구리같이 느껴졌다) 시간이나 색깔, 망언, 증언 등 평소 인지하지 못했던 범위까지 폭넓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말할 기회가 많은 권력의 언어에 지지 않으려는 저항의 언어는 상대적으로 목숨을 거는 몸부림에 가까웠고 그렇기에 정확하게 관찰하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읽어내려 갈수록 앞으로 배려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로 집중되었다. 권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저항의 언어는 없어지지 않겠지만 나부터라도 의식을 가지고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모든 문제에 동일한 관심을 보일 수는 없다. 그러나 '관심없음'을 입 밖으로 뱉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관심이 없어도 괜찮은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권력행위이기 때문에 놀란다. 고통의 우선순위가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은 이 사회의 권력이 정한 고통의 크기에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P. 287)


* 이 도서는 한겨레출판에서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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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 돔 아래에서 - 송가을 정치부 가다
송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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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기자, 정치는 생물이야. 펄떡거리는 생물"

"기자님. 정치인한테는요. 자기 부고 기사를 제외하곤 모든 기사가 이득이에요."

"여의도는요. 욕망의 용광로예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모두가 최선을 다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고요. 그 욕망을 불순하게 보면 안 되겠죠?"

"사람들이 외면하는 이들, 약자들에게 먼저 손 내밀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기자. 난 그게 좋은 기자라고 생각해."


저자는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 후속작인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자신이 정치부 기자 시절 정리해놨던 기록을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그 기록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국회를 출입하며 국회의사당 바닥의 먼지 한 톨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취재했던 결과였다.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던 저자가 눈 앞에서 목격한 정치현장은 열정이 넘치는 욕망의 용광로였고 권력을 손에 쥐고자 하는 자들의 일상은 하나같이 기괴하고 어이가 없었다.


현직기사가 쓴 소설답게 생생한 현장묘사와 생동감 있는 전개가 드라마를 보듯 눈 앞에 그려져 흥미로웠다.
등장인물 개개인의 개성이 잘 표현되어있어 좋았는데 그 안에서 특종을 따내기 위한 기자들의 분투들은 눈물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평소 정치뉴스를 보면 막장드라마나 코미디보다 더하다고 생각될 때가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저분들의 뇌속에 과연 국민을 생각하는 자리가 있긴 한걸까? 의문이 들때가 많았다.
그런데 하이퍼리얼리즘인 소설속에서도 역시나 였고 어쩌면 우리는 국민을 위해 일해줄 단 한명을 가려내기 위해 더욱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하는거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치를 잘 몰라도, 정치에 관심 없어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드라마화 확정이라는데 영상으로 봐도 재미있을 듯.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한 고민을 놓지 않는 송가을 같은 기자가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의 사랑도 응원하고 싶다😊


* 이 도서는 한겨레출판에서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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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의 월든 - 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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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아이의 자존감을 길러줘야 한다거나 성인의 자존감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유행하기 시작하자 나는 의아했다. (...)
나는 나 자신이 높이거나 낮추거나 할 만큼의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가치를 따로 생각해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게 그렇게 못 참을 일인가? 그게 뭐 어때서?' (P.152)


가수 이효리님의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는 명언이 생각나는 에세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들까지 사회에서 쓸모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강박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에게 색다른 위로를 전해주는 에세이랄까?
헨리 데이비드소로의 <월든>은 워낙 독특하고도 모순적인 모습에 나는 소로의 철학을 소화할 수 없겠구나 싶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저자 박혜윤을 통해 재해석되니 달랐다.


저자는 10여 년 동안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며 살았다.
그러다 두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 하나는 버려도 사는데 큰 지장은 없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누가 보기에도 간소한 삶을 이루었어도 버리고 줄일 것이 완전히 없어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말자는 저자의 느슨한 인생관이 독특하지만 묘하게 끌리고 어느새 설득되는 재미있는 책이다.
생각해보면 나이를 먹었든 안 먹었든, 어떻게 살고 있든 사는 건 문제의 연속이고 그렇다면 저자처럼 인생을 하찮게 보고 놀이처럼 접근해보자는 방식이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린다.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독특한 철학이 인상적이었는데..


저자는 아이의 학교성적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에 섭섭해하던 아이에게 세가지 이유를 설명해준다.
첫 번째, 공부의 동기는 엄마가 아니어야 한다. 네가 열심히 뜨개질하거나 열심히 동생이랑 놀거나 열심히 공부하거나 엄마는 모두 중립적으로 바라보려한다. 그래야 너 스스로의 동기로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
두 번째, 인생은 새옹지마. 한 번의 성공이나 실패로 단정지을 수 없다.
세 번째, 엄마는 너의 성공에도 기뻐하지 않는만큼 너의 실패에도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 네가 무엇을 이룬다 해도 그건 네 존재 자체로 엄마가 기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느낄 것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만 한쪽에서 삐죽삐죽 자라나는 부모의 욕심과 불안의 싹을.
대부분의 부모는 그 싹을 잘라내지 못해 아이의 성적표와 씨름하는 하루를 보낸다.


집안일에 대한 재해석은 또 왜 이렇게 멋질까?
판매의 기술을 높이는 방법은 거절의 숫자를 늘이는 것인데 거절 당하는 만큼 성공의 기회와 경험치가 늘어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버티는 힘이 필요하고 이때 평소 하찮게 행하던 집안일이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하지 않으면 삶이 망가지지만 별 보상도 없고 인정 받기도 어려운 집안일에 가족 모두를 참여시켜 놀이로 만드는 철학이 여기에 있다.
알쏭달쏭해 보이지만 집안일을 놀이처럼 행하듯 인생 또한 아둥바둥 산다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하찮게 보고 놀이처럼 살라는 뜻이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흘러가는 대로 관찰하는 것.
굉장한 용기와 강단이 필요해 보이는 삶이지만 정작 저자는 자신도 때때로 불안하다며 자신의 삶을 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책을 만나는 독자들이 '나'와 주변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나'로 살아보는 것.
그것이 박혜윤저자가 전해주는 독특한 위로방법이었다.


* 이 도서는 다산북스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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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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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P.605)


삶에 대한 의지는 마지막 옥희의 독백에서 빛이 났다.
역사 속 인물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주어진 삶을 놓아주고 또 붙잡고 버티면서 묵묵히 삶을 이어나간다.​
또한 모진 격동의 세월속에서도 서로에게 지키고 싶었던 사랑이 있었고 그렇기에 버틸 수 있었던 삶이었다.
아픈 전쟁의 역사를 견뎌내고 노년이 된 옥희의 독백은 독자로 하여금 시간의 힘을 믿고 살아내라는 위로의 메세지를 주는 듯하다.


최근 윌라로 파친코를 듣고 있는데 종이책의 질감과 오디오북의 차이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파친코보다 좋다.
(오디오북은 아무래도 놓치는 부분이 있어 그런듯)
호랑이를 등장시켜 장엄하게 시작되는 초반부도 좋았고 일본인 관료가 사냥꾼에게 목숨을 구해준 값으로 전했던 징표가 후반부 사냥꾼 아들에게로 이어지는 인연도 감동적이었다.
600페이지의 긴 서사를 읽는 동안 한번도 ? 하는 부분없이 흐름이 매끄럽고 감동적인 대하소설을 읽을 때 그렇듯 마음이 차오른다.


저자는 어머니로부터 김구 의사를 도우며 독립운동에 기여하신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하는데,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소설에 녹여냈다고 하더라도 놀랍도록 디테일한 묘사가 얼마나 이 작품에 공을 들이고 치밀한 사전조사를 했을지 작품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호랑이를 닮은 용맹함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동시에 따뜻한 사랑을 품었던 역사 속 그들은 모두 작은 땅의 야수들이었다.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 이 가제본 도서는 다산북스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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