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의 월든 - 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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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아이의 자존감을 길러줘야 한다거나 성인의 자존감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유행하기 시작하자 나는 의아했다. (...)
나는 나 자신이 높이거나 낮추거나 할 만큼의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가치를 따로 생각해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게 그렇게 못 참을 일인가? 그게 뭐 어때서?' (P.152)


가수 이효리님의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는 명언이 생각나는 에세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들까지 사회에서 쓸모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강박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에게 색다른 위로를 전해주는 에세이랄까?
헨리 데이비드소로의 <월든>은 워낙 독특하고도 모순적인 모습에 나는 소로의 철학을 소화할 수 없겠구나 싶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저자 박혜윤을 통해 재해석되니 달랐다.


저자는 10여 년 동안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며 살았다.
그러다 두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 하나는 버려도 사는데 큰 지장은 없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누가 보기에도 간소한 삶을 이루었어도 버리고 줄일 것이 완전히 없어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말자는 저자의 느슨한 인생관이 독특하지만 묘하게 끌리고 어느새 설득되는 재미있는 책이다.
생각해보면 나이를 먹었든 안 먹었든, 어떻게 살고 있든 사는 건 문제의 연속이고 그렇다면 저자처럼 인생을 하찮게 보고 놀이처럼 접근해보자는 방식이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린다.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독특한 철학이 인상적이었는데..


저자는 아이의 학교성적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에 섭섭해하던 아이에게 세가지 이유를 설명해준다.
첫 번째, 공부의 동기는 엄마가 아니어야 한다. 네가 열심히 뜨개질하거나 열심히 동생이랑 놀거나 열심히 공부하거나 엄마는 모두 중립적으로 바라보려한다. 그래야 너 스스로의 동기로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
두 번째, 인생은 새옹지마. 한 번의 성공이나 실패로 단정지을 수 없다.
세 번째, 엄마는 너의 성공에도 기뻐하지 않는만큼 너의 실패에도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 네가 무엇을 이룬다 해도 그건 네 존재 자체로 엄마가 기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느낄 것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만 한쪽에서 삐죽삐죽 자라나는 부모의 욕심과 불안의 싹을.
대부분의 부모는 그 싹을 잘라내지 못해 아이의 성적표와 씨름하는 하루를 보낸다.


집안일에 대한 재해석은 또 왜 이렇게 멋질까?
판매의 기술을 높이는 방법은 거절의 숫자를 늘이는 것인데 거절 당하는 만큼 성공의 기회와 경험치가 늘어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버티는 힘이 필요하고 이때 평소 하찮게 행하던 집안일이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하지 않으면 삶이 망가지지만 별 보상도 없고 인정 받기도 어려운 집안일에 가족 모두를 참여시켜 놀이로 만드는 철학이 여기에 있다.
알쏭달쏭해 보이지만 집안일을 놀이처럼 행하듯 인생 또한 아둥바둥 산다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하찮게 보고 놀이처럼 살라는 뜻이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흘러가는 대로 관찰하는 것.
굉장한 용기와 강단이 필요해 보이는 삶이지만 정작 저자는 자신도 때때로 불안하다며 자신의 삶을 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책을 만나는 독자들이 '나'와 주변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나'로 살아보는 것.
그것이 박혜윤저자가 전해주는 독특한 위로방법이었다.


* 이 도서는 다산북스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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