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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열 아홉, 고달픈 입시지옥을 뚫고 대학 문턱에 들어섰다. 지긋지긋한 고딩 딱지를 떼어 버렸다는 안도감, 대학이 별게 아니란 걸 알아버린 좌절감, 강의를 듣는 게 싫었다. 어차피 멍하니 앉아 있을 텐데, 그렇게 쫒기듯 도서관을 찾았다.
꽃피는 3월, 학기 초라 도서관은 쓸쓸하리만치 한산했다. 간간히 창틈으로 들려오는 학생들의 웅성거림을 빼고는 도서관은 거대한 동굴같았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손 끝으로 훑으며 여기저기를 다니는 게 좋았다. 그러다 그냥 마음가는대로 책을 꺼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읽었다. 난 신경숙의 소설을 그렇게 만났다. 3월, 따스함 속의 외로움, 한 줄기 빛같은 위로.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연약한 풀잎같은 시절, 몇 번의 상처를 견뎌내며 내 삶에는 몇 개의 마디만이 세월의 흔적으로 남았다. 스물 아홉, 늦은 나이에 시작한 첫 직장은 나를 현실에 안주하도록 했다. 난 더 이상 인생에 대해, 내 자존심에 대해, 꿈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신경숙이라는 작가는 또 한번 나를 흔들어 깨웠다. 슬픈 청춘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열 아홉의 나를 찾아보게 했다. 시간이 정말 더럽게 안간다고, 빨리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중얼댔었는데, 돌아보니 10년을 한 걸음에 뛰어넘은 것 같아 억울하기까지 하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줄여서 ‘어.나.벨’이라 부른다. 이름 참 곱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촛농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앗 뜨거, 하고 아파 소리치다가도 그 따스함에 이내 마음이 누그러지고, 한 방울씩 떨어진 촛농은 켜켜이 쌓여 묵직한 방패가 된다.
슬픈 청춘들의 노트-윤, 단이, 명서, 미루
인생에 대한 숱한 의문과 풀리지 않는 고민들, 타오르는 마음을 분출할 데가 없어 끝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그 청춘들은 지금 다 어디 있을까?
청춘이라는 이름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는 영원히 깨지 않을 꿈처럼 암담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빛이 있는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맸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은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청춘은 한 순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절망도, 내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도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져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그래서 뭔가를 아는 사람들만이 청춘의 뜨거운 한 시절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는 거겠지. 우리, 오.늘.을. 절.대. 잊.지.말.자.
윤은 엄마를 잃었다. 그리고 단이를 잃었다. 명서도 미루를 잃었다. 태어나면 소멸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했다. 시작과 끝, 만남과 이별은 한 쌍을 이룬다. 그럼에도 그 조합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윤은 자취방 창문에 검정색 도화지를 붙여 세상을 향한 마음을 닫아 버린다. 마음 속에 담아둔 말이 너무 많아 낯선 길거리를 배회한다.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리라 믿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세상과 떨어져 점 하나 찍고 위태롭게 살아가는 윤에게 미루와 명서, 그리고 윤교수는 세상을 향한 하나의 출구였다. 문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들은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었다. 서로의 아픔을 들여다보니 내 마음이 아프다는 것도 알았다. 괜.찮.아.나.을.꺼.야, 쓰다듬어 주다보면, 결국 그 손이 쓰다듬은 것이 내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새로운 아픔의 시작이었다. 청춘의 열병이 한 순간이라는 말은 절망과 함께 행복했던 순간도 가져가 버렸다. 윤과 명서는 서로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미루와 단이가 없다는 사실을 매 순간 경험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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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그.절.망.만.큼, 이라는 그의 목소리가 물처럼 스며들어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왜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기쁨이지 만은 않을까. 왜 슬픔이고 절망이기도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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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네 명의 청춘들, 윤, 단이, 명서, 그리고 미루. 사회는 강의실에 앉아 있어야 할 대학생들을 거리의 시위현장으로 내몰았다.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는 그들에게 미래를 말해주지 않았다. 시대의 ‘크리스토프’가 된 그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힘겹게 투쟁했던 그들의 삶이 새삼 슬퍼진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아 - 36.5도에 대한 갈망
내가그쪽으로갈까?
내가그쪽으로갈게.
그들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는다. 윤은 단이의 죽음을 알고도 단이에게 편지를 쓰고, 몇 시간이고 낯선 거리를 배회한다. 그 거리 어딘가에서 명서 역시 누군가를 찾아 헤맨 듯하다. 새벽 무렵, 술에 취한 명서의 전화를 받고 달려 나가보면 명서가 길바닥에 힘없이 쓰러져있었다.
그들이 찾아 헤맨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이는 윤에게, 미루는 명서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서로에게 익숙해진 그들은 꽁꽁 숨겨 두었던 마음속 상처를 나눠 갖고 있는 서로의 분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상대의 아픔을 쓰다듬는 일은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살갑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떨어져 나간 살점을 찾아 헤매는 일은 낯설지가 않다.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 같다.
모르는 사람 백 명을 안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간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세상을 향한 분노가, 누그러질 수 있을까? 훗날 명서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포옹의 순간들을 사진에 담는다. 36.5도의 체온이 서로에게 전해지는 순간에는 미움이나 절망 따위를 찾아볼 수 없다. 따뜻함, 살아있다는 느낌, 네가 있으니 나도 여기 있다는 존재감, 그들이 찾아 헤맨 것은 결국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청춘, 아름다운 ‘크리스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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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 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p.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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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교수는 첫 날 강의에서 ‘크리스토프’이야기를 꺼낸다.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이로 분한 예수를 업고 험난한 강을 건넜다는 성자, 크리스토프. 윤교수는 이제 막 피어난 젊은 영혼들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크리스토프인가? 아니면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인가?”
삶은 고통이다. 혼란스러운 순간을 마주할 때면 내 몸에 달라붙은 짐들을 덜어내고 싶다. 훌훌 털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만 싶다. 그렇게 하면 조금 가벼워질까? 이런 저런 고민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 새 시간은 저만치 흘러 있다.
한창 푸른 청춘의 계절에는 모른다. 뜨겁도록 눈부신 여름이 지나고 무르익어가는 가을쯤 되면 어렴풋이 알 수 있겠지. 견딜 수 없이 힘들었던 아픔도, 어딘가에 토해내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던 열기도, 어느 순간 소멸해버린다는 사실. 그리고 내 뒤에는 조용히 나를 따르고 있는 발자국이 보인다. 한 발 한 발 꾹꾹, 고통의 무게를 견뎌낸 만큼의 선명함을 새긴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