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레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소설 ‘마음’은 제목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변화를 관찰한다. 화려한 수식은 없다.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담담하게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전달한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 속에서 주인공의 관점 변화나 세상에 대한 모순된 태도는 그 자체로 심리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남겨둔다.  

- 대비되는 심리 구도 : 선생님과 나 

   이 글은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유서’의 세 부분으로 전개된다. ‘선생님과 나’와 ‘부모님과 나’는 아직 사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순수한 대학생 ‘나’의 관점에서 보여지며, 마지막 부분 ‘선생님과 유서’는 유서에 담긴 ‘선생님’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간다. 심리를 드러내는 화자를 주인공으로 보자면, 이 글의 주인공은 ‘나’와 ‘선생님’ 이렇게 두 명이 되는 셈이다. 

  주인공인 ‘나’와 ‘선생님’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비를 이룬다. ‘나’는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대학생이다. 인생에 대해 어느 정도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며, 취업 문제나 아버지의 임종 앞에서도 비교적 의연하게 대처하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나’는 인간에 대한 막연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지식인을 ‘선생님’이라 깍듯이 존칭하며, 관심과 친밀함을 전하려 애쓴다. 반면 ‘선생님’은 아집과 삶에 대한 번민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메이지 시대의 지식인이었던 ‘선생님’은 젊은 날에는 누구 못지 않게 학문에 열정을 불태웠지만, 세상의 욕망과 마주하면서부터 스스로 섬이 되어 하루하루를 외롭게 살아간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인공인 ‘나’는 ‘선생님’의 그런 모습에 이끌린다. ‘선생님’은 간혹 형식적이고 차가운 말투로 ‘나’의 접근을 피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 자신의 말하기 힘든 과거를 ‘나’에게 털어놓음으로써 인간과의 마지막 소통을 시도한다. ‘선생님’의 과거가 담긴 유서를 받고 나서 ‘나’의 행동은 어떻게 변했을까? 소설은 이 부분까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친구를 배반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얻었지만, 친구의 자살로 인해 평생을 죄책감과 고뇌로 보내야 했던 ‘선생님’의 모습을 ‘나’는 어떻게 바라볼까? 학문적인 스승으로, 또 인생의 선배로 ‘선생님’을 동경했던 ‘나’의 시선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주인공인 ‘나’가 선생님에 대해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죽기 전에 꼭 말해두고자 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 인간적인 고뇌, 껍질과 욕망의 충돌  

  이 소설을 읽고, 정확하게는 ‘선생님과 유서’부분을 읽고, 난 ‘인간적이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새삼 궁금했다. 그리고 ‘외로움’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졌다. 한 여자를 두고 절친한 두 친구가 동시에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그 사실을 한 친구만 알고 있는 거다. 여자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털어 놓는 친구를 보며 심각한 갈등에 빠지겠지. 이건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고뇌다. 왜냐하면, 이러한 갈등은 ‘껍질’과 ‘욕망’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껍질이란, 인간 관계 속에서 쌓아왔던 신뢰를 말한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데로 하고 싶은 마음, 즉 ‘욕망’을 이 두터운 껍질이 막고 있기 때문에 고민이 시작된다.  껍질을 벗어 우정을 깨뜨리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욕망을 우정으로 포장된 신뢰의 껍질 속에 묻어둘 것인가. 

    인간관계의 또 하나의 문제는 ‘외로움’이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외롭다고 느낀다. 사람들과 말을 하고 연을 맺으면서 그 외로움은 잊혀진다. 그리고 서로간의 관계가 돈독해졌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의지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나’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를 넘어 ‘나’와 세상과의 소통이 된다.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인터넷이 끊겼을 때,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쓰듯이 말이다. 세상을 향한 끈은 항상 사람을 통한다. 그래서.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은 세상에서 내쳐진 기분을 안겨준다. 외로워서 세상에 나갔지만, 세상에게 뺨을 맞으니, 이번에는 아예 돌아누워 버린다. 더 많이 외로워지고 살아갈 힘이 없어진다. 선생님의 친구가 자살하게 된 것 역시, 이런 마음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단순한 구성과 단조로운 말투로 쓰여 조금은 심심한 듯한 느낌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극 중 누구에게도 연민을 갖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쉽게 읽어나갔지만, 읽고 난 후에는 참 긴 여운이 남는다. 

*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년 동경 출생. 본명은 긴노스케. 동경대학 영문과 교수를 거쳐 1907년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하면서 전업작가로 활동. 대표작으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풀배개' '산시로' '그 후' 등이 있음.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이자 국민작가로 추앙받고 있으며, 1천엔 짜리 지폐의 모델활동도 함(아래 왼쪽은 소설 '마음'의 표지그림, 오른쪽은 나쓰메 소세키의 모습)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