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화
아사다 지로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믿을 수 없는, 그러나 믿고 싶은 8개의 마법이 펼쳐졌다, 내 눈앞에.

어떤 이야기는 따뜻했고, 또 다른 이야기는 놀라움이 가득했으며, 다른 이야기는 슬픔이 가득했다. 따뜻함, 놀라움, 차가움의 온도를 합치면 사람의 체온에 딱 맞는 온도가 나올거란 생각을 해본다. 작가가 내게 주고 싶은 것은 딱 그정도의 따뜻함, 내 손을 잡을 때 따뜻함을 느낄 그정도의 온도였을 거라고. 사람과 손을 잡았을 때의 온도를 좋아한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서로의 온도를 나눌 때면 차가운 이 세상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따스함과 함께 나도 바라게 된다. 살아가다보면 내게도 책 속의 신비로운 일들이 펼쳐질지도 모른다고. 이미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삶에 책임이라는 것을 짊어지고 살아가면서 따뜻함을 만나기 보다는 차가움을 더 많이 만났다. 그러다보니 행복만을 이야기하는 책은 딴 세상을 보는 듯한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신기하게도 외롭고 아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나면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누군가도 내가 겪고 있는 고독감과 견디기 힘든 현실의 무게에 아파하고 있다는 글을 볼 때면 함께 주저앉아 울고 싶은 마음을 느끼게 되고 그 누군가가 끝에는 행복해지게 될때면 나도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내게도 기적이 한번쯤은 발견하게 되길 바라면서.

 

산다화에 나오는 8개의 이야기는 행복하기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픔 속에 피어난 꽃이 더 아름답듯이 외로움, 아픔, 고독 속에서 아사다 지로가 손끝으로 기적을 한방울 떨어뜨려서 따스한 행복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다섯개 있고 세개는 약간은 기묘하고 섬뜩하기도 한 이야기들이다.(주관적인)

기묘한 이야기는 예전에 즐겨보던 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가 떠오를만큼 독특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이었다. 결말을 이야기 해주지 않는 아사다 지로 덕에 궁금증을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펴야했던 이야기들이었다. 결말을 이야기 하지 않는 그의 방식이 참 맘에 들었다. 독자 맘대로 결말을 상상하게 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책에 나온 주인공의 말처럼 진실을 아는 것보다 수수께끼인채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는 것이 더 좋을거라 생각에 결말을 말하지 않고 이야기들을 끝이 아닌 끝맺음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의 이야기는 끝이 없는 이야기인지도 모를 일이다.

 

기묘하고 독특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책 속에서 내 마음을 끈 것은 삶의 작은 기적들을 적어놓은 것 같은 다섯개의 이야기들이다. 애완동물에 의지해 삶을 견디는 주인공이 애완동물이 죽고 나자 그 상실감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모습, 부도위기의 회사로 인해 가족들을 위한 선물로 자살을 결심하는 중년의 남자가 겪는 절망, 현실이란 잣대에 얽매여 놓쳐버렸던 첫사랑 여인을 잊지못하며 가슴에 품고 사는 40대의 남성등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상처하나 없이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를 품으로 감싸안으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활짝 웃을 수 있는 진정 행복한 웃음을 지을수 있는 주인공들이다. 그런 주인공들을 보며 가슴이 떨렸으며, 아렸으며, 나도 웃을 수 있었다. 아사다 지로가 그린 절망 속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 속에서 자주 보는 모습과 겹쳐진다. 그런 주인공에게 아사다 지로는 아주 작은 기적을 일으켜준다. 너무 크지 않은 기적이기에 황당하거나 말도 안된다라는 표현은 할 수 없는, 그러나 그 작은 기적만으로 삶의 방향이 달라지고 차갑기만 한 현실이 따뜻해지게 하는 그런 기적을 일으켜 준다. 작은 기적이기에 내 삶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행복한 기대를 가져본다.

 

책의 뒤에는 책 속의 내용을 판타지라고 적고 있다. 얼어붙은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판타지. 얼어붙은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것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는 말이라고 공감하지만 판타지라는 글자에 아사다 지로가 정말 마법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혼자 피식 웃음을 짓는다.

 

차갑기만 한 현실이라 탓하며 나는 누군가가 내 생에 마법을 걸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역시도 누군가의 마법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아사다 지로가 글로 마법을 보여주었다면 나도 책에 나오는 시에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 아픔을 먹으면서 마법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마법사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법을 보지 못할 뿐,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믿게 된다. 나의 손으로 누군가에게 마법을 걸어주고, 그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렇게 작지만 따뜻한 마법을 서로에게 걸어주다보면 조금은 얼어붙은 마음을 서로 보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사다 지로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그렇게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나눠주라는 마법의 주문을 걸어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어른이어도 마법의 주문을 믿는 나는 다른 이에게도 이 마법을 사용해보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따뜻한 눈이 내리는 겨울을 미리 본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다.

'삶에 지친 당신에게 따뜻함을 드릴거예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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