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구리의 계절 1
야치 에미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읽으라고 하는 책들은 죽어라고 읽지 않으면서도 만화책은 죽어라 읽었던 학창시절, 친구와 가방 속에서 만화책을 꺼내 교환하는 것이 아침 일과였다. 그렇게 좋아했던 만화책을 대학교에 가면서 멀리하게 되었던 것은 왜일까? 어쩌면 만화책을 함께 볼 친구를 갖지 못한 것일까? 하긴, 만화책보다 더 흥미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겠다.

 

 대학 생활에도 신선함보다 익숙함 혹은 지루함이 커가던 무렵 룸메이트와 만화책을 자주 빌려 보거나 만화방에 가고는 했다. 만화책이라는 것이 그렇듯 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중독이 강한지라 그 해 그 친구와 같인 살던 일년은 만화책을 본 시간이 텔레비젼을 보던 시간보다 많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만화 속 세상을 보고 또 보며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우리는 더이상 행복할 수 없을만큼의 행복을 느꼈다고 말하고는 했다. 아마 우리는 만화가 어린이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만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도 우기고 또 우겼으리라.

 

 그랬던 적도 있는데 이십대 후반이 되면서는 만화 곁에 갈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함께 갈 친구가 없다는 것, 함께 빌려 볼 친구가 곁에 없다는 것, 키득 거리며 혹은 비명을 지르며 같이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 서러워지던 때도 있었다. 혼자 가서 보기에는 무언가 어색한 나이. 그럼에도 만화가 주는 행복이나 즐거움은 그대로라 만화방 앞에 서서 밍기적 거리기를 여러 번이다.

 

 만화가 보고프나 볼 수 없는 내 맘을 그녀가 알았을까? 내게 만화책을 보내 준 그녀 역시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맘이 너무 예뻐서, 만화책 내용이 좋아서 이 책을 받은 후부터 종종 펼쳐보게 된다. 만화책 리뷰를 할려고 했는데 쓰면서 보니 이건 이 책을 선물해 준 그녀가 내게 준 만화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말하는 것 같다. 참 고마운 그녀가 내게 건네 준 만화 이야기를 해야겠다.

 

'언젠가'

'나도 할아버지처럼 인형을 만들 거야.'

'센'이라는 이름밖에 모르는 남자애.

 

 주인공 스구리는 어렸을 때 이웃집에 할아버지와 살던 센이라는 남자애를 대학을 졸업한 지금까지도 기억하며 마음에 방을 내주고 있다. 센이 주고 간 인형과 함께. 센이 인형 깍는 소리를 좋아했던 스구리 역시 목각인형 조각을 배우고 있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사를 간 센이 스구리 앞에 나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장편이 될 거란 내 예상과는 달리 2 권으로 마무리 되었다.

 

 예쁘지 않은 주인공, 이게 이 작가의 특징이다. 예쁘지 않은 주인공이 만화가 끝나가면서 예뻐 보이는 것은 그 아이가 지닌 마음 때문이다. 여리면서도 곧은 심성을 가졌으며, 약하면서도 강인한 정신은 가진 아이. 남자가 인생을 바꿔주는 요즘 십대들이 보는 만화와 달리 혼자의 힘으로 꿋꿋하게 일과 사랑에 한 걸음 다가서는 모습이 마음을 울린다.

 

 책이건 만화책이건 어쩌면 이리도 마음을 울리는 것은 사랑스러워 보이는 걸까? 혼자 방에서 우울하게 뒹굴다 이 책을 보면은 창문을 활짝 열고 차가운 공기에 인사라도 하며 나도 어디론가 힘찬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것 같다. 이것만으로 된 것 아닐까? 책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내게 이 책을 준 그녀가 내게 선물한 것은 만화책 이상이었다. 그건 만화책에 담긴 마음. 그 만화책을 읽으며 받은 감동. 또 다시 펼쳤을 때의 불어오는 추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 그리고 다시 내딛고 싶어지는 발걸음. 고마워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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