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말로는 부족한 다코나 패닝이 주연으로 한 어린이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었다. 그 영화가 어린이 책을 영화화 한 것을 안 순간 주저없이 그 책을 만나기 위해 서점으로 향했었다. 책을 원작으로 나온 영화인 경우 책을 먼저 보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영화를 보고 책을 보면 무언가 허전하달까, 그런 마음이 들기에 이번에도 책을 먼저 보기로 했다.
#알고 있나요? 무녀리로 태어난 새끼들의 슬픔을...
펀이란 귀엽고 똑똑한 여자아이가 엄마를 도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때 아빠가 도끼를 들고 헛간으로 가는 것을 보고 엄마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빠는 도끼를 들고 어디 가시는 거예요?”
“돼지우리에. 어젯밤에 돼지가 새끼를 낳았어.”
“그런데 왜 도끼를 들고 나가세요?”
“으응, 새끼 한 마리가 무녀리(한배 새끼 가운데에서 맨 먼저 태어난 새끼 : 옮긴이)란다. 무녀리는 너무 작고 약해서 제 구실을 못하거든. 그래서 아빠가 그걸 없애려는 거야.”
“없앤다고요? 그걸 죽인다는 거예요? 다른 것들보다 작기 때문에요?”
“펀, 소리지르지 마라! 아빤 옳은 일을 하시는 거야.”
무녀리라는 것을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어미짐승의 몸에서 태어난 여러 짐승 중 가장 첫번째로 태어나 몸이 약한 새끼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무녀리들이 몸이 약하기에 다른 형제들에게 밀려 첫번째로 빛나는 세상을 보게 된 무녀리가 세상의 밝은 빛을 보기도 전에 차가운 도끼에 목숨을 잃어가는 걸가? 사육이라는 것은 이렇게 아프다.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육에 대한 지식도 그것에 감정을 집어넣고 이름을 만들어 넣으면 사람일인양 아프게 느껴진다.
겨우 첫페이지에 나오는 무녀리인 돼지에게 내 감정이 이입된 것은 왜일까? 펀의 다른 것들보다 작기 때문에 죽이는 거냐는 높은 비명소리 때문인걸까? 아니면 펀이 아빠를 말리러 달려나가는 발걸음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기때문일까? 생명은 소중하다. 어린이들 책에서 그것은 더욱 소중하다. 아빠를 말리러 간 펀은 이른 아침에 일어난 선물로 무녀리인 귀여운 새끼 돼지를 받게 된다. 그 돼지의 이름은 '윌버'이다. 토실토실하고 새하얀 털이 귀여운 윌버는 펀이 학교에 갈때면 차가 서있는 곳까지 나와서 배웅하고는 한참이나 그곳에 서있는 착한 돼지이다. 그 모습이 눈에 밟혀 펀은 학교가 파하면 얼른 집에 와 윌버를 돌본다.
#내가 친구가 되어 줄게, 난 샬롯이야!
윌버가 무럭무럭 자라날 수록 펀의 부모님은 마음이 무겁다. 좋은 돼지가 못 될 무녀리에게 사료를 사먹이고 싶지 않기때문이다. 그래서 윌버를 팔 생각을 하지만 펀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자 펀이 자주 갈 수 있는 삼촌인 주커만씨에게 윌버를 판다. 펀은 헛간에는 들어갈 수 있지만 윌버의 곁으로는 가지 못하고 그 너머에서 의자에 앉아 지켜만 봐야한다. 윌버도 펀도 그걸로 족한다.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 하는 건 어린이와 동물의 착한 마음이기에 가능한 건 아닐까?!
하지만 윌버는 심심하다. 펀이 학교에 가면 혼자서 그 헛간에서 가만히 있어야 함이 어린 윌버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다. 튼튼한 코로 땅을 파헤쳐보고도 싶고 전처럼 펀이 태워준 유모차 위에서 본 하늘이 그립기까지 하다. 그래서 암거위의 말을 듣고 탈출하지만 역시나 먹이 앞에 주저앉고 헤프닝으로 마치게 된다. 윌버는 먹이를 다 먹고 나서 함께 놀아 줄 헛간 친구를 찾지만 아무도 윌버와 놀아주지 않는다. 암거위는 알을 품느라 바쁘고 새끼 양은 윌버가 냄새가 나서 싫고 대식가 생쥐 템플턴은 꼭 필요할 때는 보이지 않는다.
혼자 조용히 외롭다고 말하는 윌버에게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친구가 되어줄게"라는 아름다운 소리가. 잠을 자고 아침에 만나자는 친구의 말에 윌버는 아침이 오기까지 몇번을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윌버의 심장 두근거리는 소리에 내 귀가 간지럽다. 아침이 오자 윌버를 친구를 찾고 친구는 "문안이오!"라는 멋진 인사를 건넨다. 윌버와는 다른 외모, 아주 다른 외모이다. 바로 '샬롯'이라는 거미였다. 헛간에서 가장 똑똑하고 마음이 착한 샬롯이였다. 윌버는 파리를 잡아먹는 샬롯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100% 맘에 드는 친구를 만나는 건 힘든 일이기에 친구가 되기로 한다.
#이별 한번이면 충분하니까-나, 샬롯이 지켜줄게!
봄에서 조금 더워지기 시작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동안 친구 샬롯도 있고 암거위도 새끼를 7마리나 낳아 씨끌벅적한 헛간이 윌버도 좋아질 때쯤 늙은 양에게 끔찍한 소리를 듣는다. 자신을 잡아 크리스마스에 고기로 쓸 것이라는 말에 윌버는 먹이조차 먹지 못하고 힘없이 누워있기만 한다. 그때 샬롯이 말한다. 윌버를 지켜주겠다고! 헛간에서 가장 영리한 샬롯이었다. 세상에서(물론 윌버가 본 세상은 헛간이 전부지만) 가장 멋진 거미줄을 짤 수 있는 샬롯이었다. 그런 샬롯의 말에 윌버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음식을 먹고 잠이 든다.
그 밤 샬롯은 윌버를 재우고 거미줄로 작업을 시작한다. 아주 힘들지만 친구를 위해서는 꼭 해야하는 작업을. 윌버는 이미 펀과의 한번의 이별을 경험했으니까, 윌버는 샬롯의 친구니까. 샬롯은 절대 친구를 죽게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샬롯과 윌버는 환상의 커플이 되어갈 준비를 한다. 친구라는 이름만큼 멋진 커플 이름이 또 있을까!!
#어른들이 말을 줄이면 동물과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책에서 펀은 윌버와 헛간 식구들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 거미 샬롯의 목소리까지! 말이 통하게 된 펀과 헛간 동물들은 친구가 된다. 아니,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고 마음을 열었기에 대화가 통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펀이 엄마는 걱정이다. 동물과 말이 통한다고 하는 어린이를 만나는 것은 극히 드문일인까.
엄마가 펀을 걱정해 찾아간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마음을 울린다. 어쩌면 동물들은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것을 듣지 못하는 것은 어른들이 말을 너무 많이 해서일지도 모른다고. 쉴새없이 말하는 어른들이 말을 줄인다면 동물들이 말할차례가 될지도 모른다고. 또한 어린아이들은 어른이 듣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다고.
멋지다. 우리 모두에게 둘리틀선생님처럼 동물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했었다니. 어릴때부터 내 이야기만 너무 많이 했나보다. 동물들의 말에 조금만 더, 식물들의 말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여 볼 것을. 그랬다면 분명 친구가 될 수 있었을텐데.
#웃음, 감동, 교훈-없는게 없는 아이들을 위한 종합 선물셋트인 책이다.
아이들을 위한 책을 찾기는 생각보다 힘들다.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오기에 더욱 힘들다. 그래서 아이들책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책들을 선택하게 된다. 샬롯의 거미줄 역시 꽤 긴시간을 사랑받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서, 변덕스러워지는 아이들 세상에서 이 책이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공감할 내용의 책이기 때문이다. 친구, 우정, 동물과인간의 교감을 담고 있는 책은 아이들에게 신나는 세상을 상상하게 만든다. 정말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집에서 잘자고 있는 강아지를 깨워서 대화를 해볼려고 노력할 것이다. 물론 대화에 성공하는 아이는 극히 드물겠지만 분명 누군가는 성공하지 않을까? 어른들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분명 대화를 성공한 아이들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본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외모도 다른 성격도 중요하지 않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친구를 위한 마음만이 필요한 것이다. 펀과 윌버, 샬롯 또한 헛간에 사는 모든 동물은 서로 외모가 다르지만 상대방에 대한 마음은 비슷하다. 친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혼자 자라는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상대방을 위한 배려를 알려주기 힘이 든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런 책이 얼마나 큰 선물일 것이다.
샬롯이 윌버를 위하는 모습과 윌버가 마지막에 샬롯을 위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친구란 존재만으로 참 고마운 존재라는 것. 생명은 참 소중하다는 것. 행복함을 생생하게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 사랑은 전해지고 전해진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도 중요하는 것을 샬롯과 윌버 그리고 펀에게 배웠다.
정말 이것은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