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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못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은 만화책만큼이나 수루룩 읽히고, 그만큼 손에서 놓기도 힘들지만 그 함량은 가볍지 않다. 수월하게 읽힌다는 점과 무알콜 칵테일같은 세련미로 주목받는 다른 일본여성작가들과 비교할 때, 이 작가는 확실히 한 수 위다. 그렇게 생각하게 해준 책은 절판된 [풍장의 교실]이지만, 야마다 에이미를 국경너머 이국의 문인이라기보다는 다정한 이웃집 언니처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은 단연 [나는 공부를 못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는 [나는 예쁜 여자가 좋아]라는 2퍼센트, 아니 70퍼센트는 부족한 듯한 제목으로 출간됐던 이 책의 재간을 반긴다.
주인공 도키다 히데미는 스스로 '한없이 가벼움'을 표방하고, 그에 대해 일말의 가책이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듯한 전형적인 요즘 젊은이다. 일례로 그에게 책은 얼굴이 잘생긴 저자가 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분류될 뿐이다. 바를 운영하는 연상의 여인을 여자친구로 둔 히데미는 제목 그대로 공부를 못하지만, 언제나 당당하다. 그 이유는 누가 뭐래도 여자에게 인기가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공부를 못해]는 이성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을 추앙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경멸한다. 그 냉엄함은 범인으로서는 원망스러울 정도지만, 그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인기'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히데미와 같은 학급의 여학생은 사소한, 그러나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한없이 무능하면서 책에서 주워읽은 현학적인 글귀들만 줄줄 늘어놓는 남자친구를 증오한다. 히데미가 '콩가루집안'이라고 묘사하는 집에서도 단연 최고의 골칫거리인 어머니는 아들의 담임선생과 태연히 술을 마시고, 여자로서의 매력을 어필하는 데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가하면 히데미는 소위 학교에서 '베스트 3'로 불리는 청순한 가식덩어리 여자아이들에게 반감을 느끼고, 닳고 닳아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는 마리를 좀더 멋진 여자로 명명한다. 어딘가 어긋난,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한 비주류 인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작품 내내 한결같다. 이 인물들은 소설 내에서도 인기인으로 묘사되는데, [나는 공부를 못해]가 주장하는 인간적인 매력이란 게 바로 그 지점인 탓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가식과 기만보다는 싸구려 일탈이 100만배는 낫다"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핵심주제라 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와 다른 사람까지 능란하게 끌어안는 편협하지 않은 손길이 곳곳에 묻어있어 설령 이 명제에 찬동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소설에서 슬프고 동시에 인상적인 부분으로 자살한 급우의 '시차병'에 대한 서술을 들 수 있다. 인간은 원래 25시간을 주기로 태어난 동물인데, 시간을 쪼개고 덧붙여 24시간 안에 간신히 맞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적응에 실패해 손을 들어올리거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등의 가벼운 일마저 커다란 무게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국 그런 짐이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얘기. 갑작스레 닥쳐온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히데미는 한 차례 크게 앓은 후, 결국 비극까지 성장을 위한 자양분으로 끌어안는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어디까지나 비틀렸지만 행복한 가족 속에서 형성된 히데미의 유달리 단단하고 건강한 의식이다. 세상의 기준, 혹은 편견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생각난 김에 덧붙이자면 대부분의 중심인물들이 '쿨하다'는 점은 이 소설의 장점이자 한계일 수 있다. 날것의 알맹이를 일말의 편견없이 그대로 직시하고, 고통을 굳건히 이겨내는 진정한 의미의 멋짐을 사바세계의 남루한 우리가 과연 가질 수 있을까? 뭐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꿈꿔보는 것 자체가 문학을 읽는 즐거움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