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구입한 앤 카슨의 <남편의 아름다움>을 읽다 보니 한 가지 알쏭달쏭한 구절이 등장한다. “랍비들은 율법을 가젤의 한정된 교미에 비유하는데 / 남편 가젤에게는 매번이 / 처음 같기 때문이다.”(52쪽) 그러면서 그 인용문의 출처를 “<바빌로니아 탈무드> 에루빈 54b”라고 적어 놓았다. 카슨의 원문이 뭔가 궁금해서 구글링해 보니 “Rabbis liken Torah to the narrow sex of the gazelle, for whose husband every time is like the first time”이라고 나온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구절인데 ‘한정된 교미’라는 희한한 오역이 나온 까닭은 십중팔구 ‘에이, 설마 그거겠어?’ 하는 생각 때문이었겠지만, 사실 여기서는 ‘설마 그거’가 맞는 해석이다.
즉 이건 “랍비들은 율법을 [암컷] 영양의 좁은 음문에 비교하는데, 왜냐하면 그 수컷에게는 매번의 성교가 처음처럼 [신선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의 히브리어-영어 대역본을 구글링해 보니 몇 가지 다른 영역문 역시 같은 뜻으로 되어 있다. “Why were matters of Torah compared to a hind? To tell you that just as with a hind, its womb is narrow and it is cherished by its mate each and every hour like the first hour”(왜 토라의 내용은 암사슴에 비유되는가? 암사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자궁이 좁기 때문에 그 짝이 매번 성교할 때마다 처음 성교할 때처럼 느끼고 소중히 여긴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또 이런 번역도 있다. “Just as the womb of the hind is narrow, so she was always a virgin”(암사슴의 자궁이 좁기 때문에, 항상 처녀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암사슴의 음문이 좁은지 아닌지, 그래서 수사슴이 교미 때마다 일신우일신의 기분을 느끼는지 아닌지, 나로선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울러 음문이 좁은 것을 순결과 처녀의 상징이라 단언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나로선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는 아무래도 좀 미심쩍은 이런 주장들도 고대인의 관념 가운데 일부임은 분명하며, 아울러 위에 소개한 인용문은 어디까지나 ‘토라의 신선함’을 가리키는 비유로 사용되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또 앤 카슨의 책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것 역시, 여성인 저자의 평소 사고방식이나 주장까지는 아니고 단지 제목에 언급된 ‘남편’이 보낸 연애 편지에 인용된 구절일 뿐이므로, 이걸 가지고 저자가 어떤 의도를 품었다고 단언하기도 곤란해 보인다. 하지만 최근 김훈의 소설을 가지고 벌어진 논란을 생각해 보면 (사실 애초에 불필요한 논쟁이 불거지다 보니 자꾸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면도 없지 않다) 이것 역시 저자가 뭔가 여성혐오적이고 남근중심주의적 사고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해야만 좋은 사람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조만간 ‘제목부터 뭔가 한남충스럽더니만 내용 역시 한남충스럽다’는 비난과 함께 별점 테러라도 한 번 해줘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