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이다. 나귀님이 보기에는 얼마 전 웹소설과 웹툰 원작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에서처럼 결국 '각색' 문제는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을 각색하는 것이야 자유이겠지만, 그 결과물이 충분히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허구라며 빠져 나갈 여지를 적게 주어서 논란을 자초한 것은 아닐까.


흥미로운 점은 <암살자(들)>의 주연 가운데 두 명의 전작에서도 이번처럼 역사 왜곡 혐의가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박해일은 <나랏말싸미>에서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한 무명의 승려를 연기했고, 유해진은 <말모이>에서 한글 사전 편찬에 관여한 까막눈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교수와 광인"의 클리셰를 답습하려고 실제 역사에 허구를 끼워넣은 격이었다.


여하간 양쪽 모두 충분히 상상가능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던 까닭은 사실과 허구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어주지 못한 어설픈 각색 때문이었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와 관련된 야사의 기록을 근거로 들면서 마치 정설처럼 홍보해서 논란이 일었고, <말모이>도 실존했던 '조선어학회'의 역할을 과도하게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했다.


<암살자(들)>의 문제도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음모론 소재에만 몰두한 나머지 여러 가설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없어 보이는 것에 매달렸으니,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들었다 하더라도 딱히 공감은 안 될 수밖에 없다. 어느 야당 의원의 지적처럼 '노무현이 권양숙의 사주로 암살당했다'는 음모론을 다룬 영화가 나온들, 그럴싸하다며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나저나 저 영화의 소재인 육영수 피격 사건에서 한 가지 아이러니는 당시 경호를 담당한 대통령 경호실장 박종규가 실제 '암살' 가능성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연구에 전념하여 <암살사 연구>라는 저서까지 내놓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당시로선 독보적인 암살 방지법의 전문가였던 셈인데, 정작 육영수 피격 사건에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비난받고 물러났다.


나귀님은 예전에 어느 헌책방에서 그 책을 구입해서 갖고 있는데, 정확한 제목은 <(대통령 경호를 위한) 암살사 연구>이고, 발행처는 대통령 경호실이며, 발행일은 1971년 6월 20일인 비매품이다. 케이스를 벗기면 겉표지 한쪽에 "대외비"라고 적혀 있고, 속표지 다음의 "주의사항" 한쪽에 [ /500]이라고 인쇄되어 있어서 결국 500부 한정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보통은 [ /500]의 빈칸에 연번을 적어 넣게 마련인데, 나귀님이 산 책에는 아무 표시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은 재고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의사항에는 "(1) 이 著書는 室員에 限하여 閱讀토록 할 것 (2) 이 著書는 複製, 複寫, 拔萃할 수 없으며 秘密文件에 준하여 管理할 것"이라는 지침이 나온다. 인명 등의 주석은 별책으로 첨부했다.


본문은 서론, 연구 목적과 의의, 개념 소개에 이어 서양 고대, 중세, 현대의 사례를 소개하고 러시아, 미국, 일본, 구한말의 사례로 넘어갔다가, 현대 각국의 지도자 경호 제도를 소개하며 마무리된다. 부록으로 "세계암살사건일람" 도표와 "정리의궤 반차도"와 "능행도"의 도판이 수록되었는데, 아마도 조선 시대 국왕 경호의 실제 모습을 예시하는 의도인 듯하다.


1971년의 <암살사 연구> 이후 박종규는 1973년에 <암살사 연구 (속편)>도 간행했는데, 불과 1년 뒤에 육영수 피격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찌 보면 자신의 몰락을 예견한 셈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이 책의 간행을 중심으로 '암살을 연구했지만 정작 막진 못한 경호실장' 이야기를 영화화했다면 오히려 더 그럴싸하진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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