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작가 앤 카슨이 202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양이다.(사실 '그' 성별에 '그' 지역이면 오히려 오츠나 애트우드가 받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나귀님도 몇 권 읽어본 작가이니 반갑기도 하고, 서양 고전을 바탕에 깔고 현대적 재해석을 도모한 독특한 작품 세계가 꽤 인상적이었으니, 그 정도면 충분히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나 수긍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저 작가의 저서인 <남편의 아름다움>에 나오는 "한정된 교미"를 황당한 오역의 사례로서 종종 언급했던 나귀님이다. 원래는 유대교에서 토라(모세오경)의 신선함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번 읽어도 항상 새로운 토라'를 '여러 번 박아도 항상 처녀 같은 영양의 음문'에 비유한 구절을 재인용한 것이어서 "좁은 음문"(narrow sex)이라고 번역했어야 한다.


이걸 발견했을 즈음, 김훈이 신작 소설에서 갓난 딸의 기저귀를 갈다 목격한 '음문'을 묘사했다가 소아성애 운운 하는 비난까지 받고 있었다. 그래서 가뜩이나 페미니즘이 득세하는 판에 모두들 기피하는 '음문'을 언급하고, 심지어 '좋은 조임'까지도 강조한 앤 카슨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한남' 작가라 불러야 하지 않나 싶어서 뭔가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었다.


김훈은 이 분야에서 전적(?)이 화려한데, <칼의 노래>에선 며칠 씻지 않은 여성의 음문에서 나는 냄새를 '젓국'에 비유하기도 했었다. 흥미롭게도 앤 카슨 역시 <남편의 아름다움>에서 조강지처를 버리고 '잘 안 씻는 여자'에게 가버린 남자를 언급했으니, 이것 역시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야말로 본색은 '마초한남충개저씨'가 아닐까 의문을 품게 하는 단서이다.


체취에 대한 집착은 중세 시대에나 유행한 줄 알았더니, 향수 전문가 루카 투린의 전기에서 어느 조향사는 '며칠 씻지 않은 여자의 냄새'가 나는 향수를 최상급이라며 소개하기도 했고, 수년 전부터 SNS를 통해 미국 십대 소녀 사이에서 유행한 이성 유혹법 중에 음문 분비물을 향수 대신 몸에 묻히는 '바빙'(vabbing)도 있었다니, 결국 유행도 돌고 도는 듯하다.


일본 만화 중에 <땀과 비누>라는 것도 있어서, 체질상 땀이 많은 여자와 그 냄새에 반해 노상 '킁카킁카' 하는 남자의 어딘가 살짝 민망한 로맨스였는데, 어째서인지 뒤로 갈수록 체취에 관한 이야기는 적어지고 일반적인 직장인 연애담에 불과해져서 실망스러웠다.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사람이건 짐승이건 각종 '꼬순내'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상 본능이 아닐까.


여하간 이래저래 민망한 이야기이지만, 또 일상의 일부분이기도 하니, 굳이 그걸 글로 써서 널리 알린 행동도 주책맞을 수는 있어도 비난 받을 만한 일까진 아니다. 추위에 새파래진 갓난아기의 음문이건, 좁디좁은 영양의 음문이건, 며칠 동안 씻지 않은 냄새(카슨의 표현으로는 "당신 가랑이 사이의 맛")건 간에, 작중 인물의 발언일 뿐 작가의 취향은 아닐 테니까.


아직 앤 카슨의 책을 다 읽어 보지는 않은 나귀님이니 기껏 그중 몇 권에 나온 음문과 체취 같은 지엽적인 묘사만 가지고 그의 성향이나 지향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문제의 언급을 비롯해서 각종 서양 고전에서 나온 인용문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는 점은 저 고전학자 출신 작가의 독창성인 동시에 한계선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서 찾아 본 신간 중에는 난다에서 나온 시집이 여럿 있었는데, 거기서도 각종 인명과 서명과 주석이 잔뜩 널린 것을 보면서, 나귀님처럼 고전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몰라도 일반적인 독자라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한정된 교미"처럼 번역자 단계에서부터 잘 소화를 못해 발생한 오류도 적지 않을 테니.


물론 판매야 별 문제 없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의 후광에다가, '산 놀란이 죽은 호메로스를 깨운' 사례처럼 유행에 열광하는 순진한 독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놀란의 영화 이전에는 '시는 어렵다! 서사시는 더 어렵다!'고 반발하다가, 이제는 '호메로스를 보자! 놀란은 더 보자!'고 외치는 상황이니, 조만간 '레이철 카슨은 틀렸다! 앤 카슨이 옳다!'고 하진 않을까.


한편으로는 고전 인용문을 벗겨내어 '발가벗은'(?) 앤 카슨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반드시 구름에 올라타야만 하늘을 노닐 수 있던 열자를 향해 '자네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않다'며 꼬집은 장자의 말도 떠오르기 때문이다. 카슨도 가끔 인용에 창작을 슬쩍 뒤섞긴 하지만, 아예 인용서와 인용문마저 허구로 지어냈던 보르헤스 정도까진 아닌 듯하니까.


게리온 단편을 번역하다 빡쳐서(?) 아예 개작까지 만들었다는 <빨강의 자서전>만 보더라도, 처음부터 게리온 단편의 개요, 번역(그런데 창작을 곁들인), 연구 과제를 줄줄이 늘어놓은 것을 보면, 이 사람은 여전히 고전학자이지 작가까지는 아니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제발트의 작품처럼 카슨의 작품도 결국 에세이의 연장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심지어 <녹스>와 <플로트>라는 작품은 그 외양부터 오늘날 일반적인 형태의 책과는 상당히 다르니, 어쩌면 앤 카슨이야말로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형식 면에서는 가장 파격적인 축에 속한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파격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격언도 있는 만큼, 최종적인 평가까지는 아직 좀 더 기다려 보아야 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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