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2월,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 섬 남쪽의 작은 어촌 버지오 인근의 좁은 만에 길이 20미터 가량의 참고래(긴수염고래) 한 마리가 갇혀 버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파도가 높을 때에 해안에서 먹잇감인 청어를 쫓다가 어찌어찌 그곳까지 들어왔지만, 도로 나가려고 해도 안쪽은 가뜩이나 물이 얕고 절벽 사이의 입구도 좁아 사실상 꼼짝달싹 못하고 갇힌 것이다.


마침 버지오에 머물던 동물학자 겸 저술가 팔리 모와트(1921-2014)는 뒤늦게야 소식을 접하고, 야생 상태의 고래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흥분하며 달려가지만, 막상 고래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자마자 경악하고 만다. 지역민이 고래를 향해 총을 쏘는가 하면, 관광객이 큰 배를 타고 무기력한 고래를 위협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분노한 모와트는 고래를 괴롭히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관에게도 신고하지만, 시건방진 외지인의 주제 넘은 간섭이라 생각한 까닭인지 모두들 시큰둥하게 외면하기만 한다. 모와트는 안타까운 마음에 고래를 구할 방법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언론을 통해 바깥 세상에도 알리지만,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래는 죽어 버린다.


모와트가 이때의 체험을 회고한 논픽션이 <고래 죽이기(A Whale for the Killing)>(1972)인데, 1981년에는 동명의 TV 영화로 각색되기도 했다. 나귀님도 1987년에 KBS <토요명화>에서 <고래를 쫓는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그 영화를 먼저 접했다가, 나중에 <개가 되기 싫었던 개>의 옛 번역본 가운데 하나의 역자후기를 통해 그 원작자도 모와트임을 깨달았다.


애초에 저 작가가 뉴펀들랜드의 작은 어촌에서 살게 된 까닭은, 또 다른 저서 <안 뜨려는 배>에 묘사된 것처럼 가뜩이나 고장이 잦은 돛배를 몰고 여행하다가 그곳에서 한동안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탓이었다. 하지만 고래 사건을 외부에 알리면서부터는 지역민과의 갈등이 불가피해졌고, 마치 쫓겨나듯이 다시 돛배를 몰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는 것이 모와트의 회고다.


특정 지역의 동물 자원에 대한 외부인의 지나친 간섭에 지역민이 반발한 사례는 '리키의 세 딸들'인 침팬지 연구자 제인 구달, 고릴라 연구자 다이앤 포시, 오랑우탄 연구자 비루테 갈디카스도 모두 겪은 바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보호 주장도 일리는 있었지만, 포시의 경우에는 이를 지나치게 과격하게 밀어붙이다가 큰 반발을 사서 결국 피살당하고 말았다.


물론 지역민의 입장에서도 반발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안 뜨려는 배>에서 모와트도 언급했듯, 그곳에서 고래가 얕은 웅덩이에 갇히거나 바위 틈에 끼이는 일은 그리 드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통행이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죽어서 부패하게 되면 그 악취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지역민에게야 이런 고래는 그저 성가신 골칫거리일 뿐이다.


이처럼 모두에게 각자의 이유가 있고, 사안마다 현실적인 한계가 있으니, 고래가 되었건 고릴라가 되었건 간에 지킬 수 있는 것은 지키되, 지킬 수 없는 것까지도 무리하게 지키라고 요구하진 말 일이다. 팔리 모와트도 불쌍한 고래에게 총을 쏘아 괴롭히는 잔혹 행위에는 항의했지만, 그렇다고 저 '리워야단'을 구출한다는 불가능한 일까지 한사코 요구하진 않았으니.


그나저나 오래 전에 본 영화며 그 원작 논픽션을 새삼스레 떠올린 까닭은 당연히 최근 부산의 해안 공원에 나타난 상어 한 마리 때문이다. 서식지로서는 딱히 좋은 환경도 아니고, 먹이 활동도 전무하다는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냈고, 지역 관청에서도 외부로의 유도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한 상황이니,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할 따름이다.


뉴스에 따르면 평소 방문객도 많지 않던 공원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인근 편의점과 커피숍의 매출이 급증하며 관광 효과가 드러나자, 상어에게 '부캉이'라는 별명이 생겨나고 지자체 차원에서도 마스코트 채택과 관련 상품화가 고려되는 등 그 파급 효과가 상당한 모양이다.(하지만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는 동물을 마스코트화하는 것이 과연 좋을까?)


구경꾼 입장에서는 수족관의 인공 상태가 아닌 자연 상태의 상어를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반기는 듯하다. 심지어 상어를 몰아내려는 경찰과 소방의 시도에 반발하며 오히려 '부캉이'를 응원하고 있으니, 어쩌면 지난번 동물원 탈출 소동의 와중에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응원이 대상이 된 '늑구'처럼 감정 이입이 이루어지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온 자연'의 사례로서가 아니라 기후 변화라는 더 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상어 한 마리의 삶에서의 교란만이 아니라, 바다며 지구 전체의 질서에서의 교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까. 물론 사람들은 늑구 때처럼 이번에도 가뜩이나 답답하던 일상에서의 교란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 <고래 죽이기>에서 팔리 모와트는 얕은 물에 갇혀 죽어가는 고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괴로운 마음에 다음과 같이 썼다:


"갇혀 있는 것은 고래만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 고래와 함께 갇혀 있었다. 고래의 삶의 자연적인 패턴이 교란되었다고 치면, 우리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경계가 뚜렷한 우리의 삶의 질서 속으로 뭔가 놀라운 신비가 침입한 셈이었다. 지상의 두 발 동물인 우리로선 그 신비를 차마 측량할 수 없기에, 본능적인 두려움과 폭력과 증오를 가지고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심해에서 온 이 수수께끼는 삶에 대한 인간의 치유불가능한 무지를 나타내는 척도였다. 이 장소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의 핵심이 되어 버린 이 불가해한 비밀을 거울 삼아 우리는 스스로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춰보았으니... 그 얼굴은 추악했다."("The Deeps", excerpts from A WHALE FOR THE KILLING, 1972, in THE WORLD OF FARLEY MOWAT: A SELECTION FROM HIS WORKS. Edited and with an introduction by Peter Davidson. Boston: An Atlantic Monthly Press Book, an imprint of Little, Brown and Company, 1980, 2nd printing, p.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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