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뉴스 중에 플라톤의 명언 운운 하는 것이 있기에 뭔가 궁금해 알아보니, 무려 현직 대통령이 선거 당일 SNS에 올렸다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가리킨 것이었다. "플라톤의 말대로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투표 하셨나요?" 아마 세간에 떠도는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말을 가리킨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이 플라톤의 저서에 나오는 실제 문장이나 전체 맥락과는 무관하게 왜곡된 내용이라는 점이다. 지난번 우리나라에 번역된 토마스 만 에세이집에서 뜬금없이 인용되었기에 궁금해서 알아보고 쓴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건 플라톤의 <국가> 제1권(347c)에서 소크라테스가 정치 참여자의 심리에 대해 분석한 내용 가운데 일부를 부정확하게 옮겼다.


해당 대목에서 소크라테스는 엘리트가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정치에 참여하는 이유를 가리켜, 금전도 명예도 아니고 오로지 '자기보다 못한 자에게 지배당하는' 굴욕을 면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박종현의 번역으로는 다음과 같다.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에,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를 당하는 것일세."(101쪽)


즉 플라톤의 원래 문장에서는 "최악의 저질들"이라는 표현이 없다. 단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인데, 여기서 말하는 "자기"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엘리트"이므로, 결국 엘리트보다 못하다고 해서 "최악의 저질들"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울러 앞에서 말했듯이, 이건 유권자의 심리를 설명한 것도 아니고, 출마자의 심리를 설명했다고 봐야만 정확하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안철수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를 가리켜 금전이나 명예 때문이 아니라 '자기보다 못한 자에게 지배당하는' 굴욕을 면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하는 격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맥락부터 영 동떨어진 인용문을 가져다가 "최악의 저질들"이라는 노골적인 왜곡까지 더해 인용하며 투표 독려를 한다는 것 자체가 허위 정보 유포나 다름없는 셈이다.


굳이 플라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투표를 안 하면 최악의 저질이 당선된다'는 식의 논리는 터무니없다. 오늘날 선거 후보자는 각 정당의 검증을 거쳐 나오고, 거대 정당 두 곳의 후보 가운데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과연 "최악의 저질들"에 해당하는 후보가 공천될 수 있을까? 이는 '투표를 해야 최선의 후보가 당선된다'는 주장만큼이나 터무니없다.


결국 지난번 '환빠' 논란처럼, 대통령씩이나 하는 사람이 어디선가 주워 들은 말을 가지고 아는 척하다가 망신을 자초했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굳이 언급했다 빈축을 사는 일이야 누구나 가능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원래부터 성급하고 경솔한 성격으로 막말이며 말실수가 잦았었으니 아무래도 곱게 보일 수 없다.


최근 들어서 가짜 뉴스 척결이니, 일베 사이트 폐쇄니를 거론한다는 현직 대통령이지만, 실제로는 본인이 앞장서서 플라톤 인용문을 왜곡하며 허위 정보를 유포하니 한심스러운 일이다. 청와대의 그 많은 참모들은 물론이고 이 내용을 옮겨 보도하는 기자들도 팩트체크 따위는 하지 않는 듯하니, 머지않아 저 왜곡된 인용문이 마치 사실인 양 곳곳에 언급되지 않을까.


하다못해 최근 <국가>를 완역했다는 정암학당 고전 연구자들이라도 나서서 '플라톤의 진의를 왜곡하면 안 된다'고 반발했더라면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되었을 법한데, 어째서인지 플라톤을 안다고 자처할 법한 사람들 쪽의 반응은 의외로 잠잠한 듯하다. 지방선거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는 것인가, 아니면 빤히 보고도 각자의 정치 성향 때문에 못 본 척 하는 것인가.


지방선거 관련 후속 보도에서는 이번에 민주당이 받아든 '이겼지만 영 찜찜한' 성적표의 원인 중 하나로 대통령의 "최악의 저질들" 발언을 지목하기도 했다. 그냥 좋은 말로 투표를 독려했다면 조용히 넘어갔을 터인데, 굳이 자극하는 말을 입에 올리는 바람에 반발심만 불러일으키고 말았다는 것이니,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손해를 자초한 셈이라고 해야 맞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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