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그리스와 로마 고전의 원전 번역이 활발해지는 추세인 듯하더니만, 뜻밖에도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이미 간행 중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그린비와 아카넷 두 군데 출판사에서 간행하기에, 뭐 이런 걸 가지고 또 경쟁을 벌이나 싶어 희한했는데, 알고 보니 '원맨쇼'에서 비롯된 착시 현상 비슷한 상황인 듯하다.


우선 아카넷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은 "<소피스트적 논박에 대하여>를 시작으로 <토피카>,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등을 포함해 <분석론 전후서>, <동물지>, <경제학> 등 10여 권의 전집 목록을 준비하고 있다"는 출판사 측의 공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2020년에 제1권 <소피스트적 논박에 대하여>가 간행된 이래 2026년까지 추가로 간행된 것이 전무하다.


특이하게도 아카넷에서는 그 사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인 <영혼에 관하여>와 <에우데모스 윤리학>을 내놓기는 했지만, 양쪽 모두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아니라 '정암고전총서'로 간행되었다. 이미 '전집'이 있는데도 굳이 '총서'로 간행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아카넷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중도작파로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그 사이에 아카넷에서 근간 예고했던 저술 중에서 <정치학>, <동물지>, <경제학>은 그린비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의 일부로 간행되었고, <토피카>와 <분석론 전서>와 <분석론 후서>는 서광사의 '헬라스 고전 출판 기획 시리즈'의 일부로 간행되었다. 하나같이 김재홍의 번역이니, 혹시 아카넷과 전집을 내려다가 모종의 이유로 출판사를 옮긴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린비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은 원래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 절판된 <시학>과 <범주들/명제에 관하여>를 재간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는데 (심지어 <시학>은 원전 번역도 아니고 프랑스어판의 중역이다), 김재홍의 합류로 국내 초역(初譯) 작품을 여럿 갖게 되었고 (다만 <정치학>과 <관상학>은 구판의 재간행이다) 여차 하면 최초 완간까지 노려 볼 만하겠다.


서광사도 박종현의 플라톤 번역서가 처음 나온 30년 전부터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서를 근간 예고했었다. 어떤 번역자는 노환으로 별세하여 교체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다가 사반세기만인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나왔지만, 김재홍의 <토피카>와 김진성의 <형이상학>은 절판본의 재간행에 불과했고, 김재홍의 <분석론 전서>와 <분석론 후서>부터가 국내 초역본이다.


이쯤 되면 결국 한국 아리스토텔레스 업계(?)를 김재홍 혼자서 쥐락펴락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겉으로는 아카넷, 그린비, 서광사가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우후죽순으로 간행하며 원전 번역 경쟁에 돌입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사실은 한 사람이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서를 간행 및 재간행하고 있는 셈이니 사실상의 '원맨쇼'에 불과하다.


김재홍 외의 원전 번역으로는 천병희의 <수사학/시학>,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있고, 조대호의 <형이상학>과 <동물발생학>, 김진성의 <형이상학>과 <범주론/명제론>과 <자연학 소론집>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책들도 절판과 복간을 간행하다 보니, 마치 최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번역이 유독 활발해진 것 같다는 착시 현상을 만들어내는 데에 일조했다. 


그래도 <시학>과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뿐이었던 예전에 비하자면 훨씬 더 많은 작품이 번역되었으니 반가운 일이다. 위서와 <자연학>을 제외하면 주요 저술은 대부분 나왔으니 말이다. 다만 플라톤의 저서는 정암학당을 비롯해서 번역과 연구에 매진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원맨쇼'에 의존하고 있으니 의아하고도 아쉬운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저작 인용에 사용되는 '베커 쪽수'(1-1462)로 단순 계산하면, 지금까지 번역된 저술은 전체의 65퍼센트에 달한다. 김재홍은 공동 및 단독으로 전체의 40퍼센트를 옮겼으니, 전체 저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자연학 분야 이외의 나머지를 대부분 옮긴 셈이다.(물론 자연학 가운데 일부도 옮겼고, 논리학과 윤리학 중에 안 옮긴 것도 있긴 하지만).


비록 '원맨쇼'라고 표현했지만, 오랜 세월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에 매진한 김재홍의 업적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물론 그 완성도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겠다). 플라톤 전집에 관한 글에서도 말했듯 고전 번역은 올림픽도 월드컵도 아니니 굳이 경쟁할 필요는 없다. 다만 쉽지 않은 일인 만큼, 고생한 사람에게는 마땅한 명예가 돌아가야 맞지 않나 싶다.


여하간 이쯤 되면 김재홍도 단독 번역 전집 완간 욕심이 생길 법하지만 현재로선 어려워 보인다. 번역서가 아카넷, 그린비, 서광사, 길 등 여러 출판사에 뿔뿔이 흩어져 있고, 그린비와 서광사의 전집에는 다른 번역자도 관여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어느 출판사도 완간을 장담할 수 없으니, 머지않아 '헤쳐모여'를 거쳐 김재홍 단독 전집으로 재편되지 않을까.


이렇게 될 경우, 앞서 정암학당의 플라톤 전집이 출판사를 옮기면서 완간이 지연되고 판형이 달라져서 독자를 골탕먹였던 것과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즉 아카넷이나 그린비의 기존 '전집'을 구매한 독자는 결국 완간되지 못한 낱권만 갖게 되고, 빠진 권수만 채워 넣더라도 디자인 면에서 통일성이 없는 들쑥날쑥한 '전집'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출판사고 번역자고 간에 '전집'에 대한 철저하고 장기적인 계획 없이 시작한 것이 문제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계획을 갖고 시작해도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으니 중도에 뒤집어질 가능성이야 항상 있겠지만, 이 분야에서 모범적인 사례인 서광사와 박종현의 사례처럼 수십 년째 지속되는 협력 관계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영 안타까운 일이다.


그 와중에 박종현은 이제 <파르메니데스/테아이테토스> 한 권만 더 간행하면 결국 30년 만에 단독으로 플라톤 전집 완역이라는 위업을 달성할 예정이니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독자를 우습게 아는 저놈의 정암학당도 전집 완간을 향해 박차를 가하며 <국가>를 내놓기는 했는데, 나귀님이 예견했듯이 판형을 바꿔서 역시나 근시안적 사고방식을 노출하고 말았고...




< 김재홍의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서 >


ㄱ. 맨 앞의 숫자는 베커 번호를 가리킴.

ㄴ. 제목의 [ ] 기호는 위작으로 간주되는 저술을 가리킴.

ㄷ.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는 베커 사후 발견되어 번호가 없음.


24-70: 분석론 전서 (서광사, 2024)

71-99: 분석론 후서 (서광사, 2024)

100-163: 토피카 (까치, 1998; 길, 2008; 서광사, 2021)

164-183: 소피스트적 논박에 대하여 (한길사, 1999; 2007; 아카넷, 2020)

639-697: 동물의 부분들에 대하여 (그린비, 2024)

715-790: 동물의 발생에 대하여 (그린비, 2025)

805-814: [관상학]  (길, 2014; 그린비, 2024)

1094-1180: 니코마코스 윤리학 [공역] (이제이북스, 2006; 길, 2011)

1181-1213: 대도덕학 (그린비, 2024)

1252-1342: 정치학 (길, 2017; 그린비, 2023)

1343-1353: [가정경제학] (그린비, 2024)

( x ):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 (그린비, 2025)




<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서 (26년 5월 기준) >


ㄱ. 맨 앞의 숫자는 베커 번호를 가리킴.

ㄴ. 제목의 [ ] 기호는 위작으로 간주되는 저술을 가리킴.

ㄷ.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는 베커 사후 발견되어 번호가 없음.


1-15: 범주론

a. 김진성, 이제이북스, 2005; 2009; 그린비, 2023.

16-23: 명제에 관하여

a. 김진성, 이제이북스, 2005; 2009; 그린비, 2023.

24-70: 분석론 전서

a. 김재홍, 서광사, 2024.

71-99: 분석론 후서

a. 김재홍, 서광사, 2024.

100-163: 토피카

a. 김재홍, 까치, 1998; 길, 2008; 서광사, 2021.

164-183: 소피스트적 논박에 대하여

a. 김재홍, 한길사, 1999; 2007; 아카넷, 2020.

402-435: 영혼에 관하여

a. 유원기, 궁리, 2001.

b. 오지은, 아카넷, 2018.

436-485: 자연학 소론집

a. 김진성, 이제이북스, 2015.

639-697: 동물의 부분들에 대하여

a. 김재홍, 그린비, 2024.

715-790: 동물의 발생에 대하여

a. 김재홍, 그린비, 2025.

b. 조대호, 아카넷, 2025.

805-814: [관상학]

a. 김재홍, 길, 2014; 그린비, 2024.

980-1093: 형이상학

a. 김진성, 이제이북스, 2007; 서광사, 2022.

b. 조대호, 나남출판, 2015; 길, 2017.

1094-1180: 니코마코스 윤리학

a. 김재홍 외, 이제이북스, 2006; 길, 2011.

1181-1213: 대도덕학

a. 김재홍, 그린비, 2024.

1214-1248: 에우데모스 윤리학

a. 송유례, 한길사, 2012; 아카넷, 2021.

1252-1342: 정치학

a. 천병희, 숲, 2009

b. 김재홍, 길, 2017; 그린비, 2023.

1343-1353: [가정경제학]

a. 김재홍, 그린비, 2024.

1354-1419: 수사학

a. 천병희, 숲, 2017.

1447-1462: 시학

a. 천병희, 문예출판사, 2002; 숲, 2017.

b. 이상인, 길, 2023. 

( x ):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

a. 김재홍, 그린비, 2025.


* 저작 전반의 발췌본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선집>(김재홍 외, 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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