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뉴진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접어든 모양이다. 전원 퇴출 가능성도 나왔지만 최종적으로는 한 명만 제외하고 네 명은 복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모양인데, 적잖은 피로감마저 유발했던 그간의 날선 폭로전과 비방전과 국정조사 등의 행적을 돌이켜 보면, 과연 갈등이 봉합되고 다시 활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만 들 뿐이다.


개인적으로 뉴진스 사태를 유심히 지켜본 까닭은 한편으로 '황금알 낳는 거위가 스스로 배를 가른 격'인 초유의 사태가 황당무계했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기분이 곧 법률이다'라는 식의 억지 논리가 먹혀드는 현실이 역시나 황당무계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어린애도 아닌데 마치 '내가 원하면 세상이 따른다'고 믿는 모습이 너무 어이없지 않았던가.


나아가 뉴진스 멤버들의 가시 돋친 발언이야말로 '분기탱천한 아가씨들'의 사례 가운데 하나로서,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동덕여대 락카칠 사건과 나란히 놓고 살펴볼 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유행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젊은 여성 사이에서 걸핏하면 자기 권리를 지키겠다며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많던데, 그중에는 어불성설인 것도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뉴진스 멤버와 동덕여대 학생 모두 '자기가 강하다는 착각'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걸그룹 멤버라면 스타이기 이전에 기획사에 소속된 '을'의 입장이다, 대학생 역시 대학교에 적을 둔 '학생'의 입장이다. 그런 위치 덕분에 생겨나는 권리도 있고, 옹호하는 집단도 있겠지만, 자기보다 더 크고 강한 존재가 있음을 망각하면 곤란하다.


이 사회에는 계약과 학칙과 법률이 존재하는데, 이 모두를 깡그리 무시하고 '내가 싫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언성을 높이면 누구라도 동의하기 힘들다. 물론 분기탱천한 아가씨들 외에 무려 검찰총장 출신으로 대통령까지 역임한 작자며, 그런 작자를 옹호하는 야당이며 지지자까지도 비슷한 논리를 밀고 나가는 것을 보면, 이것도 시대정신인 건가 싶지만.


'자기가 강하다는 착각'에 빠진 아가씨의 사례라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왕도려의 무협소설 <청강만리> 제1부에 나오는 옥교룡이다. 한 유력자의 저택에 보관 중인 유명한 보검이 도난당하는 사건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도난품의 원래 주인인 유명 협객 이무백을 대신하여 사제인 유수련이 범인을 추적해 보니, 의외로 옆집에 사는 고관대작의 따님이었다. 


그 따님이 바로 옥교룡인데, 외양은 참한 규수지만 실상은 절정고수인 가정교사로부터 무공 비급을 전수받아서, 자신의 침모로 위장한 악녀 '푸른여우'보다도 한 수 위의 실력이다. 애인이 따로 있어서 정략 결혼을 회피하기 위해 보검을 훔쳐 가출하는데,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교만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이라, 가는 곳마다 폭력을 일삼아서 사고를 친다.


이쯤 되면 어디서 들어 본 줄거리 아닌가 생각할 사람이 많을 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청강만리>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저 무협소설의 제1부 원제가 훗날 영화로 제작되어 더 유명해진 <와호장룡>이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는 축약 각색 과정에서 줄거리가 부자연스러워지는 단점이 생겼으므로, 원작을 읽어봐야 비로소 등장인물과 관계와 동기가 더 선명해지게 된다.


그 영화의 백미라면 보통 대나무 숲에서 벌어지는 이무백(주윤발)과의 대결 장면을 꼽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유수련(양자경)과의 대결 장면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유수련은 옥교룡(장쯔이)의 과도한 행동을 나무라며 점잖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철없는 아가씨가 냉소를 날리며 도발하자 발끈한 나머지 버릇을 고쳐준다며 대결에 응해 진짜 실력을 발휘한다.


옥교룡의 보검에 연이어 무기가 박살나지만, 유수련은 대결 장소인 수련장 주위에 비치된 창, 검, 철봉, 갈고리 등 각종 병장기를 차례로 꺼내 휘두르고, 결국 부러진 칼을 상대방의 목에 들이대어 제압한다. 쇳덩어리도 손쉽게 자르는 보검의 '템빨' 덕분에 자기가 제일 강하다고 착각하던 아가씨는 그제야 진짜로 강한 고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원작 소설에서도 무술 실력이야 당연히 유수련과 이무백이 월등해서 쉽게 제압할 만하지만, 옥교룡이 저 무시무시한 무기인 보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데다, 하필이면 고관대작의 따님이라 다치게 할 수도 없으니 차마 살수를 쓰지 못해 수세에 몰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옥교룡이 스스로 강하다고 착각하고 오만해진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소설에서도 옥교룡은 보검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여서, 결국 이무백에게 도로 빼앗긴 다음에도 여러 번 되찾으려고 발악하는데, 이미 무공비급을 익힌 실력에 그 보검까지 갖춘다면 절정고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 까닭이다. 협객으로서의 자세를 이미 갖춘 이무백과 유수련 모두 '그런 집착을 가졌기에 너는 진정한 고수가 아니라'면서 야단치는 것도 그래서이고.


아무리 무림의 고수라도 강호의 도리와 예법에 따르지 않을 수는 없으며, 이에 어긋나면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외면을 당하기 십상이다. 협객으로 인망이 높은 유수련은 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존경을 얻어 말 한 마디면 안 되는 것이 없지만, 옥교룡은 이를 내심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그에 버금가게 덕을 쌓을 생각은 없이, 보검만 손에 쥐면 다 해결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이 집단을 이길 수는 없다. 소설에서도 옥교룡에게 몰래 무예를 전수한 스승은 비급을 터득한 절정고수였지만 산적의 기습에 허를 찔려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당대 최고의 검객 이무백도 도입부에서는 살인죄로 수배되어 도망다니는 처지였다. 옥교룡도 보검이 없을 때에는 악당에게 손쉽게 제압당한 바 있으니, 이를 모르진 않았을 터이다.


영화에서는 차마 다 담지 못한 소설에서의 행적 전체를 포함해서 살펴보자면, 옥교룡의 불행은 잘못된 선택과 지나친 아집으로 말썽을 자초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어느 대목에서는 '나도 스스로의 잘못을 알지만 차마 인정하기 싫어서 행패를 부렸다'고 시인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 무공이나 외모의 장점과는 별개로 단단히 비뚤어진 아가씨였다고 봐야 할 법하다.


영화로 각색된 <와호장룡>의 줄거리만 놓고 보면, 옥교룡도 정략 결혼을 거부하고 자유 연애를 추구하며 독자적인 삶을 추구하려 몸부림쳤다는 둥, 악당 '푸른여우'도 남성인 스승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아 원한을 품게 되었다는 둥, 흔히 말하듯 가부장제 사회의 전형적인 희생자이므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전형적인 '페미니즘' 해석이 나올 만해 보인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푸른여우' 자체가 돈 있는 남자를 끌어들여 이용하고 죽여 없애는 악녀일 뿐이고, 문제의 무공 비급도 그런 희생자 중 하나의 소지품이지만 문맹인 악녀가 그 가치를 모르고 다른 무예가에게 줘 버린 것이었다. 옥교룡 역시도 혼인의 굴레 외에 내심 동경하던 협객의 길이라는 대안이 있는데도 그저 '아몰랑'을 시전한 셈이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영화만 놓고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의 연속이지만, 소설에서의 옥교룡은 일관되게 편협하고 이기적인 기질로 묘사된다. 혼인을 앞두고 죽은 척 위장하여 시녀를 대동하고 도망칠 때에도 굳이 애완용 고양이(!)를 데려갔다가 잃어버리자, 고양이를 찾겠다는 이유로 혼자 돌아다니다가 괜한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결국 싸움이 벌어지자 살수조차도 서슴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누군가가 유수련을 사칭하여 자기 친정 식구를 위협하자 앞뒤 가리지 않고 찾아가서 공격을 가하고, 유수련은 물론이고 뒤늦게 나타난 이무백도 무고함을 주장하지만 듣지 않고 날뛰다가 결국 제압당한다. 뒤늦게야 '유수련의 해명을 듣고 보니 내가 잘못 알았던 것 같아 미안하지만, 사과하기 뻘쭘해서 일단 공격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내놓는다.


영화에서는 마지막의 절벽 투신 장면을 놓고 해석이 분분한데, 소설에서는 부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인신공양의 일종으로 설명되고, 그나마도 추락사로 가장하고 도망쳐서 옛 애인을 만나러 갔을 뿐이다. 그와도 하룻밤만 보내고 종적을 감췄다가, 나중에 혼자 출산하러 여관에 들러서도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장에게 다짜고짜 손찌검부터 날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고려원에서 <청강만리> 1-3부로 나온 왕도려의 소설은 장편 5부작 중 3부 <와호장룡>과 4부 <철기은병>의 번역인데, 3부 마지막 장면에서 낳은 옥교룡의 아들이 4부의 주인공이라 한다. 이때도 진통이 심해지자 '아들이건 딸이건 빨리 낳고 치우면 좋겠다'고 투덜대는 대사가 나올 정도니, '모성 부정' 측면에서도 역시 분기탱천한 아가씨들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물론 영화건 소설이건 간에 실화가 아니라 허구에 불과하므로,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인물의 못된 성질머리를 가지고 여성 전체를 매도하는 것이야 잘못이겠지만, 엄연히 그 바탕이 된 원작 소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내용만 가지고 여성의 자아 탐색과 성장 서사와 해방 추구를 운운하는 견강부회식의 해석들이 만연한 듯해서 한 번 꼬집어 보는 것뿐이다.


이쯤 되면 옥교룡은 말이 주인공이지 사실상 악역이나 다름없으니, 뉴진스나 동덕여대 학생들의 상황을 여기에 빗대면 당사자로선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양쪽 모두 사실을 과장하여 여론을 호도하고, 불법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자기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등, 저 영화와 소설에서 '자기가 강하다고 착각한 아가씨'와 유사한 행보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이후의 전개를 지켜보면 단순히 어려서 철이 없다고만 볼 수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르고 했다는 변명이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듯하니, 옥교룡처럼 부모도 저버리고 애인도 저버린 채 뺑소니치지 않는 한, 이제는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할 시간이 아닐까. 양쪽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든지 간에, 향후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악명만큼은 뚜렷이 남긴 셈이니...



[*] 이후 '한 배를 탔다'고 간주되던 민희진과 뉴진스 멤버 및 가족 사이에서도 '각자도생'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갈등의 조짐이 드러나고, 그 와중에도 민희진은 하이브를 상대로 한 소송 가운데 하나에서 승리했다고도 하니, 다시 한 번 <청강만리>에 등장하는 옥교룡과 그 스승(선비)과 '푸른여우'(碧眼狐狸, 벽안호리)의 한 지붕 밑 불편한 동거라는 기묘한 삼각 구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푸른여우'는 큰 행운을 얻고서도 그 취득 과정이 부정했기 때문에 결국 선비에게 빼앗기고 말았으며, 선비는 귀찮게 달라붙는 '푸른여우'를 제거하려다 도리어 약점을 잡혀서 전전긍긍하며, 옥교룡은 선비와 '푸른여우'의 암투를 진즉에 눈치 채고 형세를 관망하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고자 머리를 쓰는 형국이었으니까. 물론 지금까지의 전개를 보면 뉴진스에게는 옥교룡만큼의 눈치조차 없었던 것이 영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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