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탑방에서도 제일 구석진 곳이어서 10년 넘게 손대지 않았던 책무더기를 뒤지다 보니 <行動과 죽음의 美學>(三島由紀夫 지음, 權五奭 옮김, 人文出版社, 1971)이라는 책이 있기에 꺼내보았다. 그렇잖아도 최근 "풍요의 바다" 4부작을 비롯해서 이 저자의 단편집이며 전기까지 줄줄이 간행되기에, 또 한 세대가 지나가니 유행도 돌아오는가 하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이 책은 제1장 에세이 <행동학 입문>(1969-1970), 제2장 에세이 <끝의 미학>(1966), 제3장 에세이 "혁명철학으로서의 양명학"(1970), 제4장 단편 소설 "우국"(1961)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세 가지 저작은 저자의 논란 많은 할복 자살을 한 달 앞두고 일본에서 <행동학 입문>이란 제목으로 합본 간행되었으니, 사실상 자기 행동에 대한 예고의 성격도 지닌 듯하다.
역시나 그 최후를 예견했다고도 간주되는 단편 "우국"을 말미에 추가했는데, 역자 서문에 나오듯이 의아하기 짝이 없는 그 저자의 최후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라고 해야 할 듯하다. 그런데 수록 작품 중에서도 나귀님이 보기에 가장 뜬금없는 것은 제3장 "혁명철학으로서의 양명학"이었다. 저자의 무리하고 황당무계한 궐기 주장이 양명학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양명학은 중국의 사상가 왕양명이 창시한 유학의 분파로, 한동안 주류를 차지한 주자학과는 상반되는 입장을 표명한 까닭에 자연스레 비주류로 취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양명학이라면 기본적으로는 심성의 문제를 논의하는 관념론인데, 제아무리 비주류에 심지어 이단 취급까지 받았더라도 미시마의 할복 자살 같은 극단적 행동의 동기까지 될 수 있을까?
알고 보니 미시마 유키오의 "양명학"은 어디까지나 일본식으로 변용된 양명학, 그중에서도 특히 행동주의를 주장하는 분파의 주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실제로 해당 에세이에서도 왕양명에 대한 내용보다는 오히려 그 사상 가운데 "지행합일"의 원리를 "혁명 철학"으로 원용한 에도 시대 유학자 출신 반란자 오시오 헤이하치로의 생애에 대한 내용이 더 많으니까.
<사대부의 시대: 주자학과 양명학 새롭게 읽기>의 저자 고지마 쓰요사의 지적에 따르면, 일본에서의 양명학은 근현대의 각종 지사(志士)들의 "찰나적이고 파괴적인 테러리즘"의 원리로 오용되기도 했다. 따라서 같은 맥락에 있는 미시마의 에세이 제목이기도 한 "'혁명 철학으로서의 양명학'은 왕양명이 의도했던 '성인(聖人)의 학'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 한다.
결국 양명학의 일면만을 받아들여 각자의 행동을 정당화했던 혁명가들의 논리를 답습한 꼴이니, 이름만 같지 사실상 왕양명의 사상과는 무관하다고 봐야 맞겠다. 국내 저자 김형의 논문 "미시마 유키오의 양명학: 문화방위와 남성미의 부활"(한국양명학회논문집 <양명학> 제61호, 2021)도 미시마의 양명학 에세이를 분석하며 역시나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듯하다.
그런데 굳이 왕양명에게서 혁명에 유용할 법한 조언을 얻으려 했다면, 그의 사상보다는 차라리 생애를 살펴보는 편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왕양명은 철학자이자 관료였으며, 특히 가는 곳마다 연전연승한 유능한 장수였기 때문이다. 군인으로서의 행적을 조명한 전기인 <칼과 책>에는 "전쟁의 신 왕양명의 기이한 생애"라는 부제까지 달려 있을 정도다.
그러니 오시오 헤이하치로나 미시마 유키오가 진지하게 봉기를 모의했더라면, 단순히 "양지"나 "지행합일" 같은 사상의 경지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의 창시자의 행적을 통해 병력 운용의 실제에 대해서 배우는 편이 더 유용하지 않았을까. 물론 사상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의아할 따름인 미시마의 최후를 보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느낌이 강하니 말이다.
그나저나 앞서도 말했듯이 최근 미시마 유키오의 저서 번역이 활발해졌다. 생각해 보니 이제 타계 55주기라서 거의 두 세대가 지났으니, 새로운 세대에게는 그의 저술이 오히려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어 보인다. 고전의 경우에는 한때 유행하다 시들해져도 한 세대 지나면 자연스레 다시 주목받게 마련이라는 '30년 주기설'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려나.
하지만 작가로서의 뛰어난 역량과 별개로 극우 행보만 놓고 보면 일본 작가 중에서는 가장 우리에게 껄끄러워야 할 법하니, 얼마 전까지 'NO재팬' 선동이 대세였음을 감안하면 지금 미시마 유키오의 인기는 더욱 의아하고 우습기만 하다. 이러다가 또 독도나 위안부나 다른 뭔가가 '긁히는' 날에는 또다시 'NO재팬, NO미시마, NO오구라유나' 선동이 먹혀들지 않으려나.
이럴 때마다 나오는 말이 '업적과 논란은 별개'라는 것이지만, 그렇다 치면 지금은 매장당한 친일 작가나 심지어 고은도 언젠가는 재평가될 수 있다는 뜻인가 싶기도 하다. 문득 극우 성향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를 두둔하려 '업적과 논란은 별개'라고 주장한 사람들을 향해서, 그럼 앞으로는 항상 '파시스트 파운드'라 부르자고 꼬집은 조지 오웰의 글이 생각난다.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업적과 논란은 별개'라면 사람들도 항상 객관적 평가가 가능할 터이니, 그의 치부를 매번 언급해도 그의 명예에는 무해하지 않겠느냐는 논리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양자를 별개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터이니, 당장 '내란범 윤석열'이니 '욕쟁이 이재명'이라고 지극히 사실대로 말하기만 해도 지지자들이 격분해서 난리를 치지 않을까.
미시마 유키오의 새삼스러운 인기가 더욱 흥미로운 까닭은, 얼마 전 일본의 중의원 선거에서 극우 성향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압승해서, 여차하면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변모하게끔 헌법 개정조차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는 뉴스 때문이다. 양명학까지 들먹이면서 부조리한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미시마의 염원(?)이 55년 만에 결국 성취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 나귀님이 가진 책 중에는 미시마 유키오가 각색한 현대극 노(能)의 영역본도 있다. 마침 예전에 구입한 아서 웨일리의 전통극 노(能) 영역본이 있어서 함께 읽어보려고 꺼내 놓았다가 차일피일하며 잊어버렸는데, 결국에는 엉뚱한 "양명학" 에세이부터 먼저 읽고 말았으니 우스운 일이다. 노(能)에 관한 책은 예전 열화당의 일본 전통극 시리즈로 처음 접했는데, 같은 시리즈에서 분라쿠와 교겐과 가부키까지 나왔다고 기억한다. 마침 얼마 전에 일본에서 가부키를 소재로 한 영화가 큰 인기였다고 하던데, 그 원작 소설도 번역된 모양이다. 예전에 비해 관련 자료가 늘어났으니, 기회를 봐서 한 번 훑어보고 정리해야 되겠다.
[**] <행동학 입문>에는 미시마가 1969년 대한항공 납북 사고를 딱 하루 차이로 모면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 동해안에 가서 게릴라 침투 지역을 탐방하고 12월 10일에 강릉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는데, 아마도 저 유명한 '이승복 사건'이 유래한 1968년의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바로 다음날인 11일에 대한항공 납북 사고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행동학 입문>으로 간행된 내용이 본래 잡지 연재물이어서인지, 더 나중에 가서는 이듬해 1970년 3월 31일의 (최근 넷플릭스 영화로 제작되어 화제가 되었다던) 요도호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납치범들의 "행동"을 분석한다. 이쯤 되면 본인이 말하는 "행동"의 이론에는 바삭했던 모양이지만, 그 실천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죽음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이래저래 기묘한 일이다. 결국 이것도 마이크 타이슨의 말마따나 '누구나 계획을 갖고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의 사례인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