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좋지 않은 나귀님으로서는 이름도 외우기 힘든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헝가리 작가의 작품을 구경하다 보니, <라스트 울프>라는 것이 눈에 띄기에 저게 혹시 '그 책'인가 싶었다. 지난 여름엔가 영국 작가의 동명 단편을 구글링하다가, 그게 저 작가의 장편 내용이라고 서슴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 구글 AI의 "환각" 때문에 짜증이 막 치밀었기 때문이다.


그 발단은 추리소설 꽂아 놓은 책장을 뒤지다 예전에 구입한 단편 선집들을 꺼내본 거였다. 2000년의 저작권법 시행 이전에 나온 책이 대부분이다 보니, 외국의 단편 선집을 그대로 옮긴 것뿐만 아니라 국내 번역자나 출판사가 임의대로 엮어 만든 것도 있었다. 지금 와서 살펴보니 몇 가지 작품은 중복 수록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유명하고 재미있는 까닭인 듯하다.


예를 들어 비행기에서 우연히 옆에 앉게 된 꼬마가 하는 말에 소름이 돋은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 프레드 S. 토비의 단편 "여행 중인 아이"는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오일우 & 오수현 편역, 모음사, 1992)에도 "혼자 여행하는 아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세계 서스펜스 명작여행>(정태원 편역, 우담, 1994)에도 "어린 여행객"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두 권 모두 '초단편'에 해당하는 짧은 작품을 주로 수록했는데, 편역서임을 감안하면 어쨌거나 저작권법이 적용되는 지금에 와서는 다시 나오기 힘든 희귀본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중에는 후자에 수록된 헨리 스레사의 "시험날"처럼 1980년대 <환상특급> 리메이크로 영상화되어 유명해진 (나귀님도 소설보다 저 드라마 에피소드로 처음 접했다!) 작품도 있었다. 


"시험날"은 미래의 디스토피아 사회에서 정부 주관 시험을 앞두고 불안을 느끼는 소년과 그 부모의 이야기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해리슨 버저론"과도 유사한 내용인데, 냉전 시대인 20세기 후반에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당하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묘사한 소설이 유행했다. <화씨 451>도 그중 하나인데, 흥미롭게도 여기서는 정치적 공정성이 억압을 가한다.


여하간 이번에 꺼낸 단편집 중에는 명지사의 '세계 미스테리 특선' 시리즈의 제5권 <영, 미, 캐나다 미스테리 걸작선>(정성호 편역, 1993)도 있었는데, 그중 레지날드 힐의 "마지막 늑대"라는 단편이 눈에 띄었다. 특이한 제목이라 한 번 읽어보았는데, 가뜩이나 모호한 내용에 번역도 자연스럽지 않아서 결말이 이해되지 않기에 원문을 찾아 대조하고 싶어졌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해질녘에 혼자서 산에서 내려오는 남자이다. 금세 날이 어두워져 발길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수상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가쁜 숨을 헐떡이고 눈빛을 번뜩이는 커다란 짐승의 형체가 앞길을 가로막는다. 혼비백산한 남자는 내려오던 산길을 되짚어 도망치며 늑대가 아닐까 의심하는데, 사실 영국의 '마지막 늑대'는 15세기에 이미 멸종했다 전한다.


그를 놀래킨 수수께끼의 존재를 실제 늑대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불안한 심리에서 비롯된 헛것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이 작품은 공포 소설일 수도 있고 심리 소설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의외의 반전을 거쳐 범죄 소설일 수도 있다. 나귀님이 원문을 보고 싶어 하는 까닭도 바로 그런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에 따라서 작품의 성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Reginald Hill + The Last Wolf"로 구글링해 보니, 일반적인 검색 결과 대신 'AI 개요'가 맨 위에 나오는데, "이 작가의 작품 중에는 '마지막 늑대'란 것이 없고, 그건 다른 헝가리 작가의 작품"이라고 엉뚱한 소리를 서슴없이 늘어놓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헝가리 작가'가 바로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해당 작품의 번역서가 <라스트 울프>이다.


십중팔구 제목이 같은 두 작품을 혼동한 모양인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이번에는 "Reginald Hill + short story + The Last Wolf"로 구글링했더니, 이 작가의 이 작품이 실제로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내용에 대한 설명에서는 헝가리 작가의 동명 장편만 줄줄이 언급하고 있었다. 첫 단추는 어찌어찌 끼웠지만 다음부터는 역시나 삼천포로 빠져버렸달까.


이쯤 되니 바깥양반이 챗GPT를 사용하면서 종종 '얘가 거짓말을 잘 한다'고 투덜거렸던 내용이 무엇인지 알 만했다. 다수가 검색하는 흔한 영화에 대해서는 적중률도 높을지 몰라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검색하자 그런 영화는 없다는 둥, 다른 영화와 혼동했다는 둥, 제목은 같지만 내용이 다르다는 둥, 완전히 사실과 어긋난 주장만 서슴없는 늘어놓더라는 거다.


바깥양반도 자기 전문 분야에 대해 물어보니까 챗GPT가 용어부터 엉뚱하게 사용하기에, 야단치며(?) 일일이 교정해 주어서 이제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게 길들였다(?) 자랑하던데, 가만 생각해 보면 결국 바깥양반이 인공지능에게 무료 과외를 해준 셈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나귀님도 구글 AI에게 그게 아니라고 야단쳤다면, 결국 정보만 제공해주는 셈일까.


차라리 예전 구글 검색처럼 "Reginald Hill"과 "The Last Wolf"가 겹치는 검색 결과부터 차례대로 보여주었더라면, 나귀님이 그 내용을 살펴보면서 해당 단편은 생각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는 것이라든지, 어느 헝가리 작가의 동명 장편도 있다는 것이라든지 등등의 정보를 스스로 종합해서 알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구글 AI의 거짓말이 혼란만 키운다.


이것이야말로 테드 창이 "챗GPT는 웹의 흐릿한 JPEG이다"라는 기고문에서 지적한 문제점의 또 다른 사례인 셈이다. 모르면 그냥 모른다면 되는데 마치 아는 척하면서 엉터리 정보를 줄줄 늘어놓으니, 나귀님이 그 작품을 실제로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깜박 속지 않았을까. 이쯤 되면 과연 인공지능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을 해 봐야 할 것만 같다.


검색해 보니 구글AI나 챗GPT의 거짓말처럼 '실제로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을 가리켜 '인공지능 환각'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조세호의 '가짜의 삶'처럼 자기 능력을 벗어나더라도 일단 주어진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다 보니, 사실이건 아니건 되는 대로 주워섬기는 것일까. 모르면 솔직히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학습'의 기본일 텐데.


이제는 <라스트 울프>의 저자가 급기야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으니, 앞으로 "마지막 늑대"라는 소설에 관해 검색하면 십중팔구 이쪽에 관한 결과가 더 많이 나올 것이고, 레지날드 힐의 단편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답변이 점차 굳어지지 않을까. 결국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뭐가 더 유명한지에 따라서 존재 가치가 결정되는 셈이라 하겠다.


다만 한 가지 의외의 가능성도 남아 있으니, 바로 "마지막 늑대"를 검색하던 나귀님에게 전혀 생소한 작품인 <라스트 울프>의 가치를 애써 일깨워주려던 AI의 예지력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몇 달이나 앞둔 시점에서도, 혹시나 구글 AI는 특유의 알고리즘과 메커니즘과 기타 등등을 통해 그 결과를 미리 알고 나귀님께 넌지시 알려주려 했던 것이었을까?


이게 사실이라면 AI는 정보를 취합하고 정련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예언자이며 점쟁이로서의 위상을 이미 확보하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도 같다. 물론 그보다는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 중 누군가가 심심풀이로 "AI야, <라스트 울프> 저자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어떨 것 같아?" 하고 미리 물어본 것 때문에 결과가 누설되었을 가능성이 더 그럴싸해 보이긴 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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