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솔직히 누군지 모르겠다. 비아냥이 아니라 진짜 몰라서 하는 말이다. 사진만 볼 때에는 <나의 투쟁>이란 오해 받기 딱 좋은 제목의 책을 쓴 스칸디나비아 작가인가 싶었는데, 헝가리 소설가라니 모르는 사람이 확실했다. 하긴 작년 수상자 한강도 '한승원 딸'로만 알았던 나귀님이니, 이름조차 생소한 헝가리 작가를 알았을 리 만무하다.


물론 헝가리나 그 나라의 문학을 대놓고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에 읽은 책 중에 그 나라 소설도 하나 있었다. 지난번 옥타보 미르보부터 장 주네에 이르는 '하녀 문학'(?)을 일별하던 중에 마주친 <에데시 언너>라는 작품인데, 줄곧 담담하면서도 뭔가 기괴했던 줄거리이다 보니 의외로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헝가리라면 문학보다는 과학에서 오히려 더 두각을 나타낸 나라로서, 노벨상에서 평화상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문에서 수상자를 배출했고,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만 13명에 달한다. 이른바 '케빈 베이컨 지수'의 원조인 폴 에어디시의 전기 제목처럼, 20세기 초에는 헝가리 출신 천재 과학자가 하도 많이 배출되어 '화성인 후손설'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번역서를 알라딘에서 검색했더니, 표지가 의외로 친숙한 것이 어디서 본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세계적인 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했다지만 그리 대중적이지는 않아 보이는 생소한 작가의 책을 줄줄이 간행한 출판사가 있기에, 십중팔구 노벨문학상 특수를 노린 사전 포석인지 무모한 도박은 아닐까 생각했던 것도 기억나고 말이다.


그런데 번역서는 헝가리어 직역이 아니라 하나같이 영어와 독일어의 중역본으로 보인다. 국내에 해당 언어 구사자가 적을 터이니 일면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무려 23년 전에 임레 케르테스가 헝가리 작가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고, 무려 35년 넘게 한국외대에 헝가리어를 가르치는 학과가 있었으니, 살짝 체면이 구겨지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겠다.


작년에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이른바 K-문학 '부심'에 빠져 살았던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해외에서 한국어나 한국 문학 처지도 우리나라에서 헝가리어나 헝가리 문학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을 만하다. 즉 우리나라에서 헝가리어가 비인기인 것만큼 외국에서 한국어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거다.


헝가리어를 비롯해 한국외대에서만 개설된 학과의 언어가 비인기로 분류되는 까닭은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요가 부족하니 비인기이고, 비인기이니 공급이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건 우리나라만의 상황도 아니다. 당장 박노자도 자기가 공부를 못해서 대학에서 가고 싶은 데 못 가고 한국어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한국어의 가치며 한국 문화의 개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는 골몰하면서도, 막상 그에 못지않은 가치와 개성을 지닌 외국어와 외국 문화를 아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노벨문학상을 최초 수상했다는 사실에 한국어의 위상이 올라갔다며 '부심'을 느끼면서도, 정작 노벨문학상을 두 번씩이나 수상한 나라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른다.


물론 그 언어를 배운다고 해서 반드시 번역도 잘 하라는 법은 없다. 일부 동유럽 언어는 전공자인 원로 교수의 번역조차 오역투성이라 비난받는 실정이니, 저 헝가리 작가의 번역서를 간행한 출판사도 그런 난점을 고려해 영어와 독일어 번역가를 섭외하지 않았을까. 설령 헝가리어로 번역해도 편집 과정에서는 영어와 독일어 번역본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사실은 23년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와 관련해서도 오역 논란이 있었다. 한 출판사가 대표작 네 권을 연이어 간행했는데, 독일어에서 중역한 책뿐만 아니라 심지어 헝가리어에서 직역한 책까지도 오역 논란에 휘말렸다. 나귀님이 이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는 까닭은 무려 외대 헝가리어과 동문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까닭이다.


외대 동문도 헝가리어과 출신도 아닌 나귀님이 정확히 어떤 경로로 이 사실을 접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찌어찌 소문을 듣고 찾아가 보니 해당 학과의 동문회 자유게시판에서 문제의 헝가리어 직역본에 대한 성토가 한창이었다. 해당 교수가 타교 타과 출신에다 헝가리어를 대학원부터 접해 기초가 부족하다는 인신공격 가까운 비난까지도 나오곤 했다.


이 논란과 아울러 비슷한 시기에 외대 총동문회인지 어딘지의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또 다른 논란도 기억나는데, 이번에는 스페인어과의 어느 원로 교수가 같은 과 후배이며 당시 총장이었던 동료 교수를 겨냥해 내놓은 원색적인 비난이 중심이었다고 기억한다. 어쩐지 그 시절의 외대 동문회 게시판은 강자만 살아남는 살벌한 세계였던 것인가 하는 추측도 없지 않다.


그런데 사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에 와서 앞서의 논란들에 관해 검색해 보니 아무런 결과도 찾을 수 없었다. 십중팔구 그 사이에 웹사이트가 개편되고 자유게시판이 이전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관련 내용도 인터넷에서 모습을 감춘 것이 아닌가 짐작되는데, 이쯤 되자 문득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인터넷의 한계를 얼핏 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매일같이 어마어마한 분량의 정보를 토해내며 외관상 영원할 것만 같은 인터넷에서도 부지불식간에 유실되는 정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뜻밖에 확인된 셈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메커니즘까지는 모르겠지만, 세월이 흐르며 무관심 속에 정보의 바다 가장자리로 서서히 밀려난 기록이 결국 망각의 낭떠러지 너머로 떨어져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망각될 권리 차원에서야 뭔가가 인터넷 상에 영원히 박제되기보다는 차라리 낭떠러지행이 더 나을 수 있겠다. 다만 어딘가 살짝 허무한 그 유한성을 숙고해 보니, 무한과 전능의 경지를 감히 넘보는 듯한 인터넷도 우리의 하루살이 인생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에, 역시나 머지않아 사라질 부유물 하나를 정보의 바다 한가운데 던져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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