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전 손택의 (이 이름을 들으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손탁 호텔"이라 여전히 "손탁"으로 써버릇하는 나귀님이지만) 저서 <해석에 반대한다>의 새로운 번역본 <해석에 반하여>의 북펀드가 진행 중인 모양이다. 지난번 이후 구판의 번역자는 <채링크로스 84번지>를 말아먹은 사람이므로 이번 기회에 교체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벌써부터 느낌은 그리 안 좋다.
맨 먼저 눈에 거슬린 것은 북펀드의 목차에 나온 "나탈리 사토르와 소설"이라는 수록 에세이의 제목인데, 이후 구판에 나왔듯이 "나탈리 사로트와 소설"이라고 해야 맞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어진 프랑스 소설가이지만, 대표작 <어느 미지인의 초상화> 서문에서 사르트르가 명명해 유명해진 "신소설"(누보로망), 또는 "반소설(앙티로망)"의 대표 작가이다.
단순 오타일 수도 있지만, 막상 북펀드와 국내도서 항목에 올라온 책 소개를 읽다 보면 손택의 가장 유명한 에세이 제목도 "'캠프'에 관한 단상"과 "'캠프'에 관한 노트"로 서로 다르게 적혀 있으니, 과연 이걸 단순한 실수라고 해야 할지 살짝 망설여진다. 출판사는 '이제야 손택을 제대로 읽는다'며 자화자찬하지만, 먼저 '제대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귀님이 읽은 손택의 번역서 중에서 번역과 편집이 가장 나빴던 것은 이후에서 간행한 일기 선집이어서, 오역과 오타는 물론이고 고유명사 표기가 오락가락하는 등 전체적으로 편집을 건성으로 한 느낌이 든다. 특히 손택이 착각해서 쓴 부분을 지적하기 위해 편집자가 집어넣은 [sic](원문 그대로임) 표기를 번역 과정에서 빼버려서 원문에 없는 오류를 양산했다.
생각난 김에 지난번 언급했던 손택의 약력 속 오류도 지적하자면, "다섯 살에 마담 퀴리의 자서전을 읽고 생화학자가 되어 노벨상을 받기를 꿈꿨을 만큼 비범한 아이였다"라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퀴리 부인은 "자서전"을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집 <수전 손택의 말>에서는 '그 딸이 쓴 퀴리 부인 전기'로 정확히 옮겼던데, 어떻게 와전되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사소한 오류일 뿐이다. 퀴리 부인의 "전기"를 "자서전"이라 쓰고, "단상"과 "노트"를 혼동한들, 설마 "사울"이 "바울" 되듯 "손택"이 "발택"되고 "해석에 반하다"가 "해석에 꽂히다"가 되지는 않을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손택도 아렌트처럼 과대평가된 '여성' 저자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은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소한 실수조차 의미심장해 보인다.
저자의 명성이 지나쳐서 독자는 물론이고 번역자나 편집자조차도 비판적으로 읽지 못하는 바람에, 정말 사소한 오류조차 어떤 의도인 양 오해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는 의외로 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에서 셰익스피어 인용문의 '에어리얼'을 '에머리얼'로 잘못 입력했더니, 제자인 현직 교수가 그것조차도 '해석'하려 시도했던 일이다.
새로운 번역서에서도 손택의 대표 에세이로 내세운 '캠프'론의 경우, 그 단어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할 뿐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도 저자가 책에서 두루뭉술한 정의만 내놓다 보니, 그 저서의 맥락보다는 오히려 대중화된 맥락에서 더 많이 사용하며 말 그대로 '꿈보다 해몽이 더 나은' 격이 되었는데, '캠프'도 비슷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는 예전에 나온 <21세기 문화 미리 보기>(이영철 엮음, 시각과언어, 1999)라는 편역서의 "캠프 논쟁"이라는 장에 손택의 '캠프'론과 함께 수록된 모 메이어의 "캠프의 담론을 수정한다"("Reclaiming the Discourse of Camp," The Politics and Poetics of Camp, Moe Meyer, ed. London & New York: Routledge, 1994, pp. 1-22)를 참고할 만해 보인다.
메이어의 지적에 따르면 "캠프"는 본래 동성애자 진영에서 통하던 용어였기 때문에, 손택이 그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나서 일반적인 의미로 전용한 것에 대해 동성애자 측의 비판도 만만찮았다고 한다. 문득 지난번 아이유의 노래 제목이 동성애자 진영의 구호와 비슷하다며 제기된 논란이 생각나는데, 사실 그건 <캔터베리 이야기>에도 나올 만큼 오래 된 구호였다.
말년에 가서야 넌지시 커밍아웃을 했던 손택이었으니, 굳이 동성애자 진영의 용어를 가져다가 대중화시키는 데에 일익을 담당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어쩌면 홍석천이 시트콤 출연 당시 동성애자 사이에서만 통하는 손짓 언어를 종종 집어넣었다고 회고했던 것처럼, 자신도 그들 중 하나임을 넌지시 알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유행이란 지나가게 마련이어서, '캠프'라는 단어도 지금은 망각된 편이고, 보통은 그저 간행된 지 60년이 다 된 손택의 에세이와 관련해서만 언급되는 정도에 불과해졌다. 한때는 여러 현악기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지만, 오늘날에는 하이든과 슈베르트의 소나타 제목으로만 음악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바리톤'과 '아르페지오'의 운명과도 비슷하다고 하려나.
나귀님이 수전 손택에 관심을 갖는 까닭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평생 걸친 사람'의 사례 가운데 하나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 정체성뿐만 아니라 직업 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다니엘 슈라이버의 전기에 따르면 생계 유지를 위해 서평가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지만 정작 본인은 소설가로 더 인정받고 싶어 했다니, 어딘가 코넌 도일의 사례와도 유사하게 보인다.
아이자이어 벌린은 유명한 에세이에서 여러 작가와 사상가를 하나만 파는 '고슴도치형'과 다재다능한 '여우형'으로 분류한 다음, 다재다능한 문인으로서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애써 금욕적인 성자의 삶을 추구했던 톨스토이를 가리켜 '고슴도치인 척하는 여우'라는 묘한 평가를 내렸는데, 어쩌면 수전 손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평가를 내릴 수 있을지는 않을지...
[*] 얼마 전에 업다이크와 치버의 방한에 대한 자료를 뒤적이다 보니, 한국 펜(PEN) 지부 대표였던 전숙희의 회고에서 수전 손택이 등장한다. 손택이 미국 펜 지부 대표로 재직할 때, 문인을 투옥하는 독재 정권이라는 이유로 한국의 1988년도 총회 유치에 반대했고, 자신이 주도한 방해 공작이 투표로 좌절되자 분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렸다던가. 물론 일단 결정이 난 다음에는 총회를 위해 방한해서 "작가의 시대적 사명"이라는 연설까지 했다지만 말이다. 손택은 백남준과도 친분이 있었다지만, 한국 여성 작가와의 접촉은 어쩌면 전숙희가 처음이었을지도 모르는데, 피차 성향이 영 맞지 않았던 모양이니 과연 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전숙희는 이미 타계했으므로 그 내용은 이제 영영 알 수 없게 되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