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바셀미의 단편 "나와 미스 맨디블"은 35세 남성인 주인공이 초등학교에 재입학한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서술한다. 본인 말로는 키 180센티미터에, 군필에, 중요 부위에 털도 났으며, 심지어 결혼과 이혼도 경험한 성인이지만, 보험 회사 재직 중에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과다 (사실은 '정상') 지급해서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는 이유로 재교육을 받게 되었다.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은근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뒷자리에 앉은 남학생에게 등을 찔리며 괴롭힘을 당하고, 또 다른 남학생에게 한 번 붙어 보자는 도전도 받고 (주인공은 바로 거절한다), 체격에 맞지 않는 책상과 걸상을 바꿔 달라고 신청했다가 거부당하는 와중에도, 주인공은 담임 교사인 미스 맨디블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때 책깨나 읽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도널드 바셀미의 이름이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마도 번역서나 원서를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희귀성이 큰 몫을 담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에는 <외국문학> 같은 계간지에 단편이 한두 개씩 수록되는 정도였고, 이후에는 장편 <백설공주>와 <죽은 아버지>가 번역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나같이 절판 상태이다.
흔히 포스트모더니즘 계열로 분류되며, 기발한 발상과 의외의 전개로 유명한 작가이니, 모든 독자의 입맛에 맞기는 어려운 점도 없지 않았을 법하다. 위에서 언급한 "나와 미스 맨더빌"은 "우리 아버지의 우시는 모습"과 함께 김성곤 서울대 교수가 번역한 웅진출판의 "포스트모더니즘 걸작 선집" 제1권 <사랑은 오류>에 수록되었는데, 지금은 역시 절판 상태이다.
그나저나 오래 전에 읽은 바셀미의 단편을 다시 떠올린 까닭은 얼마 전에 경남 창원의 한 고등학교에 60대 남성이 재입학해서 교사와 학생에게 민폐를 끼쳐 논란이라는 황당한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대학까지 졸업한 노인이 재입학했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애초에 재입학을 금지하는 법령이 없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학교와 교육청의 해명은 더 황당하다.
진짜 만학도라면 교칙에 얽매이는 학교로 되돌아가는 대신 차라리 학원에 가지 않을까. 굳이 학교에 재입학해서는 나이를 무기 삼아 교사와 학생에게 호통치고 추근대는가 하면, 심지어 동급생(?)에게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여러 차례 허위 신고까지 했다는 것을 보면, 애초부터 공부에 뜻이 없고 분탕질을 치기 위해 입학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사실 '재교육'이라면 과거 소련이나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에서 실시되어 사회 전반에 큰 후유증을 남겼던 사건이 먼저 떠오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오쩌둥 정권 말기의 이른바 '문화혁명'에서 도시의 지식인을 무작정 시골로 내려보내 제대로 된 도구도 없이 강제 노동을 강요하며 정신 개조를 독려한 '하방'이었으니, 참으로 무의미한 반지성주의적 행태였다 하겠다.
그런데 한때 민주주의 국가의 대표 사례로 손꼽히던 미국의 현재 상황도 가만 보면 이와 다르지 않다. 대통령의 조변석개 예측불허 발언에 맞춰 관세가 올라가고 군대가 출동하고 하더니만, 이번에는 갑자기 세계 각지에 주둔 중인 미군 장성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놓고 인종 차별 금지와 성 평등 같은 '좌파 이념'을 척결하자며 일종의 재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찰리 커크의 암살 이후 최근 쏟아지는 각종 극우 법안을 보면, 트럼프 치하의 현실은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보법이 다른' 듯하다. 그러니 이민자 단속이며 치안 유지용 병력 투입에 이어서, 여차 하면 국민 재교육 같은 바셀미 소설의 현실화도 불가능하진 않을 법하다. 아니, 경남 창원의 사례를 놓고 보면, 적어도 그 방면에서는 우리가 더 먼저라고 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