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에서 조나단과 카리나가 어느 기사식당에 갔더니 벽에 '코 풀지 마세요. 싸움납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어서 어리둥절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얼마 뒤에 <틈만나면>이란 프로에서 유재석 일행이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다른 식당 벽에도 비슷한 경고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제야 이런 경고가 지금은 의외로 보편적으로 통하는 모양이구나 싶었다.
나귀님의 입장에서 이런 경고가 뭔가 의외다 싶었던 까닭은 식사 자리에서 코를 푸는 일이 상당히 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방에 다 들리게 코끼리 소리를 내며 코를 푸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그저 콧물을 닦아내거나 살짝 코를 푸는 정도는 충분히 용인되지 않나 싶으니까. 그래서 생각을 더듬어 보니, 예전과는 달라진 식사 예절이 적지 않은 듯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하다고 느낀 변화는 음식 냄새를 맡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락실>에서 음식을 걸고 게임을 할 때마다 출연자들이 음식에 코를 가까이 대거나, 거꾸로 음식을 코에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거북스런 생각이 들었다. 나귀님 어렸을 때에만 해도 음식 냄새는 손을 저어 가져다 맡아야지, 코를 갖다 대면 천박하다고 배웠으니.
그런데 지금은 대놓고 음식에 코를 갖다 대는 것을 보니, 혹시 나귀님이 모르는 사이에 국립국어원이나 뭐 비슷한 기관에서 일종의 유권 해석이라도 내린 것이 보편화되었나 의심해 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한편으로는 외국에서 생활하다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우리에게는 낯설었던 서양 예절이 하나둘씩 보편화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도 들고.
예를 들어 식탁에서 코 푸는 행동은 과거에만 해도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서양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거꾸로 한국에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던 밥 먹고 트림하기가 서양에서는 무례하게 간주된다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졌고 말이다. 최근 논란이 된 면치기며 쩝쩝 소리 같은 것도 한때는 꽤 자연스런 습관이었다.
따라서 언제부턴가 트림을 금기시하고 코 풀기를 용인하는 것이 뭔가 더 교양 있고 세련된 행동인가 싶어 눈치를 보던 나귀님으로선, 이제 와서 다시 코 풀기를 금기시하는 문화가 보편화되었다고 하니 헛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음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 매운 음식들을 먹을 때마다 흐르는 콧물을 어찌하란 말인가. 그냥 음식과 함께 삼킬까.
쩝쩝 소리의 경우, <놀면 뭐하니>에서 이이경의 면치기 장면 같은 것은 충분히 비판의 여지가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남의 식사 장면을 굳이 방송에 내보내고, 또 그걸 구경한다는 것도 추접스럽기는 마찬가지다.(물론 나귀님은 심은경이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앨범을 최애로 꼽으면서도 그게 스누피 만화와 무슨 상관인지 모르던 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만).
한때는 세계화며 인터넷으로 인해 국가의 경계며 문화적 차이가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오더니만, 지금은 오히려 매체의 발달로 문화적 차이가 더 부각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그런 차이가 더 널리 알려지다 보면, 결국 새로운 규범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일부나마 생기면서, 결국에는 차이가 사라지거나 희석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보면 예절이나 관습은 불과 수십 년 사이에도 조변석개할 수 있으니, 어느 한 가지를 놓고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일 수 있겠다. 한때는 축첩이나 외도에 관대하고 이혼과 동거에 엄격했던 사회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평가가 역전되었다고 할 수 있을 테니. 어쩌면 훗날 코 풀기뿐만 아니라 면치기도 전세계 공통이 되지 말란 법도 없겠고.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새뮤얼 버틀러의 소설 <에레혼>이다. 지금은 미국에 있는 무슨 유기농 마켓 이름으로 더 유명한 모양인데, "어디에도 없는"(nowhere)이라는 단어를 뒤집은 저 가상 국가의 이름 유래는 바로 이 소설이다. 이곳은 이름뿐 아니라 풍속도 우리의 기존 인식과 정반대여서, 예를 들어 질병은 범죄로 간주되는 반면 범죄는 질병으로 간주된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설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축복처럼 여겨졌던 장수가 지금은 각종 질병을 달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형벌처럼 간주되기도 하니, 그저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친 김에 안락사며 존엄사도 합법화되면 토머스 모어가 상상한 "유토피아", 즉 "어디에도 없는 곳"에 더욱 가까워지는 셈일까...
[*] <에레혼>은 김영사에서 나온 번역서가 있는데 (당시 같은 출판사에서 저서를 여러 권 내놓은 과학 칼럼니스트 이인식의 기획으로 간행한 시리즈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간에 하나 누락된 내용이 있다. 주인공이 처음 에레혼에 근접했을 때에 들은 기묘한 음악 소리의 악보가 나귀님이 가진 원서에는 들어 있는데 번역서에는 빠져 있는 거다. 그게 뭐였나 궁금해서 다시 구글링해 보니, 무려 헨델의 하프시코드 협주곡의 일부분이라는 누군가의 설명도 있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