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중고로 민족사 책이 여러 권 올라왔기에 한동안 모으던 경전 시리즈에서 빠진 것이나 채워볼까 싶어 뒤적이다가, <아함경> 번역자인 돈연의 이름을 보고 문득 그 근황이 궁금해 구글링해 보니 의외로 2023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나온다. 심지어 그 배우자로 화제가 되었던 첼리스트 도완녀는 신내림을 받아 현재는 무당이 되었다니 더욱 놀라운 일이고.


이들의 사연은 이미 20여 년 전에 방송과 서적을 통해 널리 알려졌었다. 불교계의 유명한 학승이 서울대 출신 첼리스트와 눈이 맞아 환속했고, 이후 시골에서 함께 자녀를 기르며 된장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나귀님도 역시 방송을 통해 두 사람의 사연을 처음 접했다가, 돈연의 필생 목표가 불경 원전 번역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되었다.


아쉽게도 불경 번역 사업은 돈연의 거처 겸 연구실에 화재가 발생하며 사실상 수포로 돌아가고, 이때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전재성이 잿더미에서 건져낸 일부 원고를 가지고 재작업에 몰두한 끝에 한국빠알리성전협회를 설립함으로써 본격적인 원전 번역서가 간행되었다고 알고 있다. 이후 돈연은 번역과 된장 사업 모두를 접고 나서 오랫동안 와병 생활을 했다나.


돈연의 경우에는 <아함경> 완역을 목표로 두고 매진하며, 후세의 해석보다 원문의 이해에 천착하겠다는 의미로 '아함으로 아함을 쪼갠다'는 발언을 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목표는 결국 동료인 전재성이 거질의 '니까야' 시리즈를 줄줄이 간행함으로써 대신 이루었다고 봐야 맞겠다.(다만 원전 번역에 들어간 노력에 비례해 책값이 상당히 비싼 것이 아쉽다).


전재성의 '니까야'(다만 한역 아함경과 완전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전한다) 시리즈는 처음에만 해도 신국판 하드커버로 적게는 다섯 권에서 많게는 십여 권씩 간행되었는데, 지금은 기독교의 성서처럼 얇은 종이에 단권으로 간행되는 모양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외에 초기불전연구원이라는 곳에서도 원전 번역으로 '니까야'를 여러 권 간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규모와 의의 모두를 감안하면, 불교계의 오랜 숙원이었다는 불경 원전 번역이 과거 한글대장경 간행 사업처럼 일원화되지 못하고 여럿으로 나뉘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한글대장경 역시 사업 막바지에 접어들어서는 완간 목표 달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부실해진 면이 있다는 비판도 있으니, 어느 쪽이든 간에 아쉬움은 남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예전에 누군가의 회고에서 본래 대처승의 제자인 돈연의 자질이 탁월함을 아까워 한 어느 비구승이 자기 제자로 들어오라고 권유하자, '부처 되는 데에 스승이 누군지가 중요하냐'고 반문하여 오히려 상대방이 탄복했다던 일화를 본 것도 같은데,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대처승이었다던 은사는 단지 송광사에서 대처승을 감싸며 공존을 도모한 비구승이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오히려 한글대장경 번역 사업 초창기에 봉은사에서 수년간 법정을 보좌했던 이력을 들어 법정 문하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는 듯한데, 결과적으로는 좋은 역량과 인연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만 셈이니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다. 물론 본인은 승려 출신답게 그것 역시 시절 인연이려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 듯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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