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전 손택 책이 새로 나온다기에 오랜만에 지적질하러 들렀다가, 알라딘 광고에서 <헬터 스켈터>라는 책을 발견했다. 만화는 이미 나왔으니 혹시 '그 책'인가 싶어 클릭해 보니, 정말 맨슨 패밀리에 관한 논픽션이었다. 예전에 어느 헌책방에서 페이퍼백 원서를 구입하며, 이런 책은 우리나라에서 절대 번역될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이다!
아무래도 대중적인 내용까지는 아닌 데다, 무려 1천 페이지가 넘는 책이니 번역과 편집 과정에서 제법 시간이 걸렸을 법한데, 과연 무슨 이유에서 이 책을 간행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몇 년 전에 타란티노 영화에 맨슨 패밀리가 나왔다고 하던데, 그때 맞춰 나오려다 사정상 밀린 것인지, 아니면 영화나 기타 이슈와는 별개로 기획된 결과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하필이면 또 출판사가 '글항아리'이다! 이미 여러 번 지적했듯이 번역과 편집 모두 허술하기 짝이 없는 출판사이니, 이번 책에 대해서도 반가움보다는 아쉬움, 또는 의심이 앞서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수전 손택의 책을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던 '이후'도 글항아리와 유사하게 기획에는 뛰어나지만 번역과 편집, 심지어 제본마저 허술했다는 거다.
짐작컨대 <해석에 반대한다>를 구입한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커버는 너무 얇아서 군데군데 찢어지고, 하드커버의 책등과 면지를 연결하는 부위의 천도 너무 얇아서 본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까닭에 '겨드랑이 터진' 꼴이 되고 말았다! 오타와 오역의 경우에는 손택의 일기 두 권뿐만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에서도 특히 두드러졌다고 기억한다.
손택의 번역서는 이제 이후에서 간행을 포기한 모양인지 월북으로 옮겨서 재간행되려는 모양인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번역과 편집이 뛰어난 출판사까지는 아니다 보니, 북펀드 페이지에 올라온 저자의 약력에서부터 오류가 들어 있다. 아직 책이 나오지는 않은 모양인데 과연 그대로 간행될지, 아니면 뒤늦게라도 실수를 알아채고 수정할지 기다리며 지켜봐야 되겠다.
대신 미리보기로 살펴본 <헬터 스켈터>에 대해서는 오역을 하나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토요일 동이 틀 때까지 집 안에서는 다른 소리들이 들렸다"(16쪽)라는 문장인데, 범행 당시 총소리와 비명을 들은 사람도 많았지만 출처를 알지 못했다는 설명 중에 갑자기 "집"이라 하기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원문을 살펴보니 "시간"(hours)을 집"(house)로 오독한 듯하다.
물론 사소한 오역일 뿐이다. 설마 이거 하나 틀렸다고 해서 저 두꺼운 책에서 구구절절 설명된 맨슨의 악행을 선행으로 잘못 이해할 독자는 없을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나귀님이 새로 나온 책을 직접 들춰보기도 전에 품은 의심, 즉 글항아리에서 이미 간행한 이전의 책들에서 나타났던 오류를 토대로 생겨난 불신도 어느 정도 정당화되지 않을까 싶다.
[*] 나귀님이 수집한 맨슨 패밀리 관련 자료 중에는 샤론 테이트의 부검을 담당한 일본계 미국인 검시관 토머스 노구치의 회고록도 있는데, 제목은 살짝 낯간지럽게도 <마릴린 먼로는 죽어서도 아름다웠다>(토마스 T. 노구찌 지음, 정해경 옮김, 무당, 1995)이다. 저자는 담당 구역에 할리우드가 포함된 관계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의문사한 유명 연예인 다수를 부검하는 특이한 이력을 쌓게 되었는데, 저 유명한 마릴린 먼로를 비롯해서 존 벨루시, 재니스 조플린, 윌리엄 홀든, 나탈리 우드가 대표적이었다. 먼로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사망 원인을 놓고 논란이 지속되다 보니 노구치 역시 원치 않은 주목을 받았던 모양인데, 나중에는 본인도 이런 반사적 광영을 즐기게 된 모양인지 홀든과 우드의 의문사 원인에 대해 언론에 언급했다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나. 언제 돌아가셨나 궁금해서 구글링해 보니 1927년생, 현재 98세로 아직 살아 계시다기에 신기한 일이다 싶어 덧붙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