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인터넷 밈 가운데 "다시 보니 선녀 같다"라는 것이 있다. 홍콩 배우 주성치가 나온 영화 <당백호점추향>의 한 장면인데, 남자 주인공 당백호(주성치)가 여자 주인공 추향(공리)을 처음 보자마자 '미녀라더니 별로인데' 하고 실망했다가, 곧이어 그 옆에 있는 다른 여자들이 박색임을 깨닫고는 '다시 보니 선녀 같다!' 하고 잽싸게 태세 전환을 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유명한 밈이 유래한 코미디 영화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 원작인 "당백호점추향"은 중국의 유명한 고전 소설이다. 이른바 '삼언이박'(三言二拍), 또는 '삼언양박'(三言兩拍)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명대의 다섯 가지 단편 소설집 가운데 하나인 풍몽룡의 <경세통언>에 수록되었다가, 훗날 '삼언이박'의 선집인 <금고기관>에도 수록된 작품이다.


'삼언이박'에 수록된 단편은 모두 200편인데, <금고기관>은 그중 40편만 골라 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언>이나 <금고기관>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번역본이 여럿이지만 대부분 완역이 아니라 선역이었다. 최근에야 <금고기관> 완역본이 나왔고, '삼언이박' 가운데 <유세명언>과 <경세통언>도 한 번역자의 노력으로 완역본이 나왔으니, 나머지도 기대해 볼 만하겠다.


해당 단편은 영화에도 사용된 "당백호점추향"(唐伯虎點秋香), 즉 "당백호가 추향을 점찍었다"는 제목으로 유명하지만, <경세통언>에는 "당해원일소인연"(唐解元一笑姻缘), 즉 "당해원과 한 번의 웃음으로 맺어진 인연"이라는 제목으로, <금고기관>에는 "당해원완세출기"(唐解元玩世出奇), 즉 "당해원이 기발한 계책으로 사람들을 놀리다"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그 주인공은 명대에 화가 겸 문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실존 인물 당인(唐寅, 1470-1524)이다. '백호'(伯虎)라는 호를 따서 '당백호'로도 통하고, '해원'(解元, 수석)으로 과거에 합격해서 '당해원'으로도 통했다. 소설에서 묘사된 추향과의 연애담이야 물론 후대의 창작에 불과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제작된 영화와 드라마만 해도 20여 편에 달할 만큼 인기였다.


소설에서는 풍류남아인 당백호가 우연히 타지의 부잣집 하녀 추향의 모습에 반한 나머지, 자기 정체를 속이고 그 집에 들어가 서기 노릇을 하다가 주인에게 신임을 얻고 그녀와 결혼을 해서 야반도주한다. 가족처럼 여겼던 부부가 재산도 고스란히 반납하고 사라진 것에 의아해 하던 부자는 뒤늦게야 그가 명사 당백호임을 알게 되어 놀라게 된다는 것이 결말이다.


반면 주성치의 영화에서는 "다시 보니 선녀 같다" 밈으로 대번 알 수 있듯이 당백호가 부잣집에 들어가 추향과 인연을 맺어 보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겪는 갖가지 우여곡절을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고 기억한다. 비유하자면 <춘향전>을 뒤집은 마당놀이 <방자전> 비슷한 셈인데, 우리나라에는 이 이야기가 이 영화로만 알려졌으니 살짝 아쉽기도 하다.


그나저나 저 인터넷 밈을 최근 다시 떠올린 까닭은, 비상 계엄 이후 체포와 탄핵 과정에서 '과연 일국의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옹졸한 태도로 일관한 윤석열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박근혜는 선녀였다'라는 평가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라리 톨스토이의 유명한 말을 응용해 '정치인의 옹졸함은 각자 다르게 마련'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제아무리 윤석열이 한심하다고 해서, 그에 앞서 탄핵 파면 제1호 기록을 세운 박근혜가 상대적으로 훌륭해질 리는 없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문재인이나 이명박이나 노무현이나 김대중이나 김영삼이나 그 이전의 여러 대통령처럼 저마다 큰 사고 몇 개씩은 치고 사라진 작자들이 훌륭해질 리도 없다. 저마다 방식은 달라도 국민을 괴롭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어제 뉴스를 보니 민주당 대선 후보로 이재명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비상 계엄과 탄핵 심판 이후 지금까지의 전개를 보면 당선은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나귀님으로선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선택지이다. 막말부터 위증까지 각종 구설수에 올랐던 사람임을 감안하면 더욱 믿음이 가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는 그를 보며 "다시 보니 선녀 같다"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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