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양세찬의 유튜브 영상 중에 함께 일하는 방송 관계자들의 사무실을 소개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대부분 여성인 직원들의 책상마다 갖가지 인형이며 소품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그 숫자도 놀랍지만 그 가격은 더욱 놀라운데, 결국 '귀엽지만 쓸모 없는' 물건을 왜 이렇게 모으느냐는 질문에 그 소유주 대부분은 위로와 격려를 얻는 힐링용품이라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유재석의 유튜브 영상에서도 특이하게 레고가 협찬 광고로 들어오자, 순수한 재미 외에도 '마음이 불안한 분들이 조립하며 위로를 받는 상품'이라며 의외의 힐링 효과를 강조했던 것이 기억난다. 어쩌면 가방이며 배낭에 이런저런 인형을 줄줄이 달고 다니는 아가씨들도 (역시나 대부분 아가씨들이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십중팔구는 그 의도를 묻는 질문에 그냥 '귀여워서'라고만 대답하고 말겠지만, 어찌 보면 네잎 클로버나 토끼 발이나 말굽 편자나 트럭 운전석 앞에 줄지어 늘어놓은 씨디(?)마냥 하루하루 무사와 행운을 기원하며 부지불식 간에 휴대하는 일종의 부적일 수도 있겠다. 예전에는 진짜 부적을 얻어가지고 옷 주머니나 가방 안에 넣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 원조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라헬의 '드라빔'일 수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남편을 따라간 딸년이 발칙하게도 평소 아버지가 모시던 작은 우상을 훔쳐가고 (이번에도 아가씨구나!) 노발대발한 아버지가 뒤쫓아오자 얼른 엉덩이 밑에 깔고 앉은 채 '오늘은 그날이라 움직일 수 없다'고 시치미를 떼자, 결국 아버지도 포기하고 떠나 버렸다 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드라빔'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맥상 일종의 우상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나중에 구약성서 "사무엘상"에서도 비슷하게 장인과 사위와 딸의 삼각 구도에서 '드라빔'이 등장하는데, 사울의 딸 미갈이 남편 다윗을 몰래 도피시키고 나서 주위의 눈을 속이기 위해 '드라빔'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놓았다고 한다.


이 내용을 근거로 저 우상은 엉덩이로 깔고 앉으면 안 보일만큼 작은 것에서부터,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놓으면 사람이라 착각할 만큼 큰 것까지 종류가 다양했다고도 해석하는 모양이다. 최근의 각종 피규어도 손바닥만한 것에서부터 사람만한 것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으니, 어쩌면 이런 '덕질' 문화도 무려 '성경적인 근거'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작은 우상이라고 하니 프로이트의 수집품도 생각난다. 대부분 이집트나 그리스나 중국에서 제작된 골동품 조각상인데, 책장과 진열장에는 물론이고 책상 위에까지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고 전한다. 프로이트는 이런 골동품을 종종 만지작거리기도 했다는데, 자기는 심리학 책보다 고고학 책을 더 많이 읽었다고 말했다는 일화를 보면 단순한 취미 이상이었던 듯하다.


나귀님이 보기에는 이 모두가 실제로는 종교적 심성의 발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배낭에 달린 인형이나 책상에 놓인 피규어도 이른바 '영성에 관심은 있지만 종교까지는 없는' 세대의 풍조인 셈이다. 기성 종교의 틀 안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타로와 점에 열광하는 것이라든지, 이름부터 '아이돌(우상)'인 대상에 열광해 시간과 금전을 적극 투자하는 것도 그렇다.


물론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초등학생까지 저마다의 미신에 사로잡혀 우행을 일삼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 운운 이야기하고 싶은 것까지는 아니다. 다만 우상 숭배고 기복 신앙이고 간에,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나약함을 인정하는 순간에 자연스레 솟아나는 종교적 심성의 표현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어딘가 친근함을 느끼게 되어 한 마디 해 보는 것뿐이다.


나귀님이 즐겨 보는 '앵무새 루몽다로' 유튜브 영상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크리스천 앵무새'이다. 평소에도 주인(엄마)의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내는 것으로 유명한 앵무새 루이가 '하느님'이니 '아멘' 하면서 기도까지 똑같이 따라하는 것인데, 물론 문자 그대로 '앵무새 같은 행동'일 뿐이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그 행동에는 의외로 의미심장한 데가 없지 않다.


평소 루이가 따라하는 말은 엄마의 작별 인사("잘해구와!")와 웃음소리("깕깕깕깕깕깕!")와 딸 꾸지람("유정아, 영어 숙제 해")처럼 일상다반사인 발언들이었다. 그러니 언젠가 앵무새가 발을 다쳤을 때도 엄마가 그 앞에서 '하느님, 우리 루이 낫게 해주세요, 아멘'이라는 기도를 마치 주문처럼 되풀이하다 보니, 급기야 앵무새도 그 말을 외우게 된 것이 아닐까.


앵무새의 엉뚱한 기도가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듯이, 배낭에 매단 인형이며 책상에 놓은 피규어도 그 소유주 각자의 바람과 기대의 표현, 어쩌면 불안과 초조의 표현일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아질 때가 있고, 마음이 허해질 때가 있게 마련이니, 그때가 되면 인형과 피규어, 우상과 부적, 루몽다로와 루이후이아여사가 필요할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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