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세넷의 신간이 나왔기에 클릭해 보니, 신작이 아니라 무려 반세기 전인 1972년에 나온 초기작을 번역한 것이었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왔다가 한동안 품절되었던 다른 책 두 권도 재간행된 것으로 미루어 꾸준히 독자가 있는 모양이다. 언젠가 바깥양반이 어디선가 이 양반 이야기를 듣고 와서는 책을 좀 구해 보라고 하는데 절판된 것이 많아서 꽤 고생했다.


문제는 늘 그렇듯이 책을 사 놓으라고 말만 해놓고 바깥양반이 곧바로 흥미를 잃었던가, 아니면 다른 주제로 넘어갔든가 했다는 점이다. 나귀님이야 일단 사기 시작했으니 이후로도 신간이 보이면 구입하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한 번은 <짓기와 거주하기>라는 책을 구입해서 뒤적이다 이 저자에게서 '이야기꾼'이라는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


사회학자이다 보니 딱딱한 주제를 다룰 수밖에 없는데, 어째서인지 논의 중에 개인적 회고가 종종 곁들여져서 희한하다 싶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게 의외로 재미있다! 예를 들어 <짓기와 거주하기>에는 도시 이론가인 제인 제이콥스와 루이스 멈포드와 직접 만나서 나눈 대화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일화가 소개되는데, 이게 웬만한 소설 뺨치게 상당히 재미있었다.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은 서두에서부터 이혼 후 사회복지사로 일한 어머니와 함께 20세기 중반 도시의 빈민 주택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서술한다. 이후 첼로를 전공했지만 손에 이상이 생겨서 음악을 포기하고 사회학으로 진로를 바꾸었는데, 이 과정에서 루돌프 제르킨과 머리 페라이어, 데이비드 리스먼과 에릭 에릭슨 등이 언급되니 눈이 번쩍할 수밖에 없다.


여하간 이론보다 여담이 더 재미있는 사람이다 보니, 본격적인 사회학 저서보다는 차라리 회고록이 더 흥미로울 듯한데, 이미 80대에 접어들었건만 자서전 출간 소식은 없는 듯하다. 2024년에도 <공연자>라는 신작을 내놓으면서 음악에서 사회학으로 건너온 본인의 경험에 대해서 언급했던 모양이지만, 본격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까지는 아닌 듯하니 살짝 아쉽다.


그나저나 <살과 돌> 신판 역자후기를 보면 구판에도 참여했던 번역자가 "1999년 우리나라에서 세넷의 저작 중 처음으로 번역되기도 했던" 책이라고 설명했는데, 미안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1977년 작 <공적 인간의 몰락>이 <현대의 침몰: 현대 자본주의의 해부>(리차드 세네트 지음, 김영일 옮김, 일월서각, 1982)라는 제목으로 먼저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침몰>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뒤적여 보니, 제14장 제목이 "예술을 빼앗긴 연기자"인 것으로 미루어, 결국 2024년 신작의 단서가 1977년 구작에도 이미 들어 있지는 않았나 싶기도 하다. 반세기 동안의 꾸준한 연구에 감탄하는 한편, 결국 누구에게나 범위, 또는 한계는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여하간 어서 빨리 회고록을 좀 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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