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니 미국 트럼프 정부의 폭주에서 선봉을 담당한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에서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해체에 돌입했다는 뜻밖의 소식이 나온다. VOA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설립된 미국 정부의 선전 부서로 냉전 시기에는 소련과 동구권을 상대로 방송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독재 정권 시기 검열을 피해 외부 세계 소식을 듣는 통로로 활용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정희 정권의 김대중 납치 사건에 대한 보도였으니, 국내 언론이 검열로 침묵을 지키는 와중에 VOA가 오히려 민주화 운동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지금도 러시아나 중국 등의 독재 국가를 상대로 비슷한 역할을 지속하는 까닭인지, 이번의 갑작스러운 VOA 폐지 소식에 러시아와 중국 정부는 오히려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전한다.


물론 미국 정부의 입장을 주로 대변하는 매체이니 자국의 이익을 항상 염두에 두게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보도 내용도 항상 공정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 해외원조국(USAID)의 갑작스러운 폐지 결정과도 유사하게, 수십 년째 이어진 사업을 하루아침에 없앤다는 것이 과연 미국의 장기적인 이익에 부합할지 여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이번 VOA 폐지 조치로 가장 당혹감을 느낀 쪽은 바로 탄핵 반대 시위를 주도하는 윤석열 지지자들이라는 뉴스도 있었다. 무슨 뜻인가 알아보니, 그중 다수가 탄핵 심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VOA의 방송 내용 일부를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오해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생활 영어 프로그램의 내용 일부를 일종의 암호 메시지로 해석했기 때문이라나!


그렇잖아도 극우 세력이 탄핵 반대 집회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들고 나오고, 조만간 트럼프가 윤석열을 구해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입에 올리며, 심지어 탄핵 찬성 연예인을 미국 CIA(?)에 신고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꾸준히 있었다. 그런데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미국 정부의 뒤통수로 VOA가 폐지되었으니,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어 당황할 수밖에!


한편으로는 쌤통이다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명분 없는 비상 계엄을 실시한 현직 대통령이며 그 지지자들 모두가 이처럼 극우 유튜버의 갖가지 가짜 뉴스를 신봉한 까닭에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한심하고 남부끄럽기 짝이 없다. 물론 트럼프 정부의 VOA 폐지가 실현되더라도, 극우 세력은 또 다른 가짜 뉴스로 억지 주장을 지속하겠지만.


그나저나 이쯤 되니 예전에 VOA에서 방송한 강연을 엮어 만든 책이 기억나서 책장을 뒤져보게 되었다. <미국소설론>(VOA 편저, 서숙 옮김, 탐구신서 83, 1985)이라는 문고본인데, 원제는 "미국의 소리 포럼 강연: 미국 소설"(The Voice of America Forum Lectures: The American Novel)이며, 쿠퍼의 <개척자>부터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까지 19종의 작품 해설이다.


셔우드 앤더슨의 연작 소설 <오하이오 주 와인즈버그>를 해설한 평론가 어빙 하우를 제외하면 강연자 대부분은 영 낯선 편인데, 그래도 헤밍웨이 전기로 유명한 칼로스 베이커가 해당 작가의 대표작 <무기여 잘 있거라>의 해설을 담당한 것을 보면, 대부분 현직 교수였다는 나머지 강연자들도 해당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왕 책을 꺼낸 김에 몇 가지 읽어보자 싶어서, 그나마 줄거리를 비교적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작품 위주로 고르다 보니,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앤더슨의 <오하이오 주 와인즈버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편을 읽어보게 되었다. 비교적 평이하면서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지목해 주니, 이것이야말로 비평의 미덕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허클베리 핀>에 대한 헨리 내쉬 스미스의 설명이다. 마크 트웨인의 이 소설은 <톰 소여>의 속편이자, 백인 부랑아의 방랑기이자, 유머를 앞세운 작품에, 최근 많이 비판받는 것처럼 "깜둥이"를 비롯해서 갖가지 인종차별적 표현이 넘쳐나는 등의 갖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 이른바 '위대한 미국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스미스는 출간 이후 50년간 뜨뜻미지근했던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올라간 까닭을 미국의 현실에서 찾아보려 한다. 평범한 부랑아였던 헉 핀이 보물 찾기로 벼락부자가 되어 하루아침에 모두의 주목과 선망이 되자 오히려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꼈듯이,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갑작스레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란 나라도 비슷한 처지였다는 것이다.


급기야 헉 핀은 재산과 명성을 모두 내버리고 자유로운 삶을 찾아 방랑을 떠났고, 이 과정에서 도주 노예를 친구로 삼고 위기에서 구출하며, 결국 다시 문명 세계로 돌아와서도 새로운 도주를 꿈꾸는데, 이 과정 내내 반복되는 임기응변이 미국인 특유의 실용주의와 공명한 까닭에 큰 인기를 끌었으며, 급기야 "위대한 미국 소설"로 공인받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헉 핀의 자유분방하면서도 무책임한 태도에는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뚜렷하다. "이처럼 행동하는 소년, 또는 국가는 일관성 있는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예측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태도로 행동한다는 인상을 줄 것이다."(101쪽) 이는 트럼프 정권 1기부터 줄곧 지적되었듯, 미국 문화의 저류인 반지성주의가 실용주의와 표리 관계인 것과 유사하다.


심지어 트럼프 정권 2기 출범과 함께 지속되는 폭주를 미리 예견한 것처럼 보이는 문장도 있다. "이런 소년이나 국가는 신뢰할 수 없는 우방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무도 어떻게 그가, 또는 그 나라가 미래의 상황에서 행동할 것인지 과거의 행동으로부터 추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외를 통해 미국의 국가 정책은 세계에 그같은 인상을 흔히 주어 왔다."(101쪽)


"묵계된, 또는 성문화된 법률보다는 직관적인 정의감에 호소하는 것은 바로 헉 속에 있는 미국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우리는 법을 준수하지 않기로 유명한 국민이다. (...) 이런 뜻에서 우리 문화 속에는 무정부주의적인 성격이 분명히 있다. (...) 법과 법을 대변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불경은 열정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우리 문화의 어두운 면이다."(102쪽)


물론 트럼프 정권의 폭주를 마크 트웨인 탓으로 돌리려는 것까지는 아니다. 다만 초강대국으로서의 책임을 하루아침에 내버리고 고립을 택하려는 저 나라 지도자의 행동이야말로 끝까지 문명화를 거부하며 개척지로 도주하기를 꿈꾼 저 부랑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위대한 미국 소설"로 평가되는 이유를 아이러니하게도 실감했을 뿐이다.




[*] 검색해 보니 이보다 더 먼저 간행된 <지식과 사회: 미국의 사회학>(탈코트 파슨즈 편저, 임희섭 옮김, 탐구신서 56, 탐구당, 1972) 역시 "미국의 소리 포럼 강연" 시리즈의 번역서라고 한다. 이제 와서 다시 꺼내 보기 귀찮으니 그냥 그렇다는 것만 적어놓고 지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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