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려 '70년 만에 부활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제작'이라기에 뭔가 궁금해 살펴보니, "이즈의 무희"와 시기며 배경이 유사한 "소년"이라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아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가 이제야 원고가 발견된 것까지는 아니고, 예전에 잡지에 연재되다 중단되고 이후 전집에 수록되며 완결되었다니, 결국 아는 사람은 다 알았던 작품이었다고 봐야 맞겠다.
물론 전집에만 완결된 형태로 수록되었고, 동성애를 다루었다는 이유 때문인지 그닥 주목받지 못하다가, 수년 전에 일본에서 단행본으로는 처음 간행되어 화제가 되었던 것까지는 옳은 모양이다. 하지만 '부활'이라는 표현은 과하지 않나 싶다. 전집에만 수록된 다른 작품이며 미발표 원고도 여럿일 터인데, 그러면 그 대부분은 수십 년째 '사망' 상태라는 것일까.
이 작가의 번역서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한 <川端康成全集>(전6권, 新丘文化社, 1969)만 해도 사후에 간행된 일어판 전집 전35권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격이니, 앞으로도 수많은 '부활'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다른 일본 작가며 세계 작가로 범위를 넓혀 보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니, 사실상 세상 거의 모든 문학 작품이 '부활'을 기다린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소년"은 신구문화사 전집의 연보에도 언급되었으니, 저자의 이력에서 아주 잊힌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미완성 시절에도 비슷한 시기의 작품인 "이즈의 무희"며 "16세의 일기"와 함께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어쩌면 '소년 시절 3부작'으로서 함께 놓고 봐야 할 작품일지 모른다.("16세의 일기"는 신구문화사의 전집에만 들어 있다).
그나저나 이번 사안을 핑계로 신구문화사 전집을 오랜만에 꺼내 뒤적이니, 최인훈이 공역자로 참가한 <동경 사람> 후반부를 실은 제6권 말미에 수록된 세 가지 부록이 눈에 띈다. 첫째는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에세이 "가와바따 문학의 아름다운 모순", 둘째는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 "영원한 나그네", 셋째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아름다운 일본의 나"이다.
"가와바따 문학의 아름다운 모순"은 <설국>의 번역가이자 스웨덴까지도 동행해서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통역까지 담당했던 미국 출신의 일문학자 에드워드 G. 사이덴스티커가 (책에는 엉뚱하게도 "J. 사이덴스테커"라고 잘못 나왔다) 쓴 가와바타론이다. 도입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었을 당시 한국에 와서 여행 중이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는 점이 흥미롭다.
"영원한 나그네"는 미시마가 감탄과 존경을 듬뿍 드러내며 쓴 가와바타론이다. 당시 주일 미국 대사관의 연세 지긋한 여직원이 가와바타의 팬이어서 <천우학>의 문학상 수상 기념 파티를 열었는데, "천 마리의 학"이라는 제목을 "천 개의 깃털을 가진 학"이라고 직역한 나머지 학 모양 장식을 달랑 하나만 올려 놓은 케이크를 내놓았다는 우스운 일화가 들어 있다.
이 글에서 미시마는 느긋하다 못해 무신경해 보이기까지 하는 가와바타의 평소 태도를 찬탄하지만, 사이덴스티커였다면 선뜻 동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저 소설가가 특유의 느긋한 성격 때문에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직전까지 원고를 완성하지 못하면서, 그걸 번역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와바타는 "아름다운 일본의 나"에서도 유독 번역하기 힘든 일본 고시(古詩)며 인명을 줄줄이 인용하고 있었으니, 사이덴스티커의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짜증이 났을 것도 같다. 물론 그런 까다로운 성격까지 일일이 맞춰주며 보필한 것 덕분에 일문학자 겸 번역가로서 사이덴스티커의 주가가 급상승하며 입지가 튼튼해진 것도 사실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와바타의 인기는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에 반짝했지만, 이후로는 <설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절판될 만큼 한동안 시들해졌다. 이후 가르시아마르케스가 가와바타의 <잠자는 미녀>를 오마주한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발표하고, 문학 전집 간행 열풍과 함께 이런저런 작품들이 재번역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나 싶더니, 또다시 대부분 사라졌다.
결국 제아무리 유명 작가라도 대표작 한두 가지를 제외하면 절판의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고, 소소한 작품까지 다 찾아 읽는 것은 극소수 열혈 독자의 몫인 듯하니, 이번에 자칭 '부활'한 <소년>은 과연 얼마나 갈지 지켜볼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문제의 '소년' 이름이 무려 '세이노'라는 것이다. 엉뚱한 곳에서 '세이노의 또 다른 가르침'을 만났다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