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의 연구>가 재간행된 모양이다. 여전히 최승자가 번역자로 나와 있기는 한데, 오랜 투병 이력을 감안해 보면 이번에 추가된 공역자가 예전 번역문을 대조하고 수정하는 정도의 손질만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예이츠의 말과 아즈텍 신 설명을 마치 한 문단인 것마냥 오기했던 서두의 인용문 두 가지를 깔끔하게 구분한 것이 그 한 가지 예로 보이고.
원제는 "자살의 연구"가 아니라 "잔인한 신"인데, 방금 언급한 예이츠의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서두에는 "우리들 이후의 잔인한 신"으로 나왔는데, 본문에 인용된 인용문 전체의 맥락상 "우리 다음에는 잔인한 신이 나올 것이다" 쯤이 적절해 보인다. 일어판에서는 이를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라고 번역해서, 훗날 하기오 모토가 만화 제목으로 차용한 바 있다.
저자가 지인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에 충격을 받아서 저술했다는 설명이 서문에 나와 있는데, 자살 그 자체보다는 20세기 예술이며 예술가와의 관계라는 측면을 주로 고찰하는 내용이니, 어쩌면 번역서 제목에 혹해서 집어들었다가 의외로 실망한 사람도 없지 않을 법하다. 하기오 모토의 만화와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나귀님이 예전에 길게 설명한 글을 올렸었다.
이 책의 원제를 제공한 예이츠의 발언은 알프레드 자리의 부조리극 <위뷔 왕>을 보고 나서의 충격을 토로한 일기의 한 대목이다. 일반적인 풍자와 파격을 넘어서서 광기와 무의미로까지 치닫는 연극의 내용에다, 이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 관객의 반응을 지켜보며, 과연 이 다음에는 뭐가 더 나올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여러 모로 착잡한 심정을 표현한 듯 보인다.
<위뷔 왕>은 번역본이 2종(동문선과 연극과인간/지만지)이나 있지만, 지난번에 읽은 기억으로는 어느 것도 번역과 주석 모두에서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천박하고 막무가내에 잔인무도한 성격인 위뷔 부부가 용병을 동원해 반란을 일으켜서 왕국을 장악하더니, 머지않아 외국 군대와 전쟁을 벌여 패배하자 최대한 많은 재물을 챙겨 도주한다는 줄거리다.
지난번에는 아무리 봐도 영 모르겠더니, 지금 보니 재임 내내 갖가지 논란으로 갈등만 빚다가 비상 계엄으로 자폭해서 탄핵 심판에 회부된 현직 대통령 부부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나저나 희곡의 결말과는 달리 부디 죗값을 치르길 바랐는데, 날짜 계산 착오로 갑자기 석방이라니, 이 무슨 부조리극인가. 어쩐지 연극보다 더 황당하고 잔혹한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