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초에 무함마드 깐수의 타계 소식을 접했다. 석방 이후로는 정수일이라는 본명을 사용한 모양이지만, 과거의 아랍인 행세를 텔레비전에서 익히 봤던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깐수'일 뿐이다. 분단의 희생자니, 아까운 지식인이니 하는 호의적 평가가 대세라는 것이야 알고 있지만, 뭐랄까, '잘도 속였구나' 생각하면 괘씸한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토록 추앙되는 깐수의 학술에 대해서도 비판적 검토의 여지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나귀님이 그의 연구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과거 고서점 호산방 대표 박대헌이 제기한 논문 표절 의혹 때문이었다. 한국이 언급된 서양 고서를 오랫동안 수집하고 연구했던 자신의 글을 단골 손님 깐수가 표절해서 논문을 발표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에 <월간 조선>에서 이 내용을 기사화하면서 깐수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더니, 순순히 실수를 인정하고 사죄하기에 일종의 해프닝으로 조용히 마무리되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간첩 활동이 밝혀지자 해당 기자가 과거의 표절 소동을 떠올리며 '어쩐지 수상했다'며 후속 기사를 썼고, 출소 직후 깐수가 박대헌을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일로 기억하는데, 어째서인지 없는 것이 없다는 인터넷에서도 관련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으니 기묘한 일이다. 물론 논문 표절 1건을 가지고 깐수의 학술 성과 모두를 부정해야 마땅하다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그의 활동에 번번이 따라붙는 독보적이고, 선구적이며, 전무후무하다는 찬사에 잠시 제동을 걸기엔 충분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과거 중국의 2인자였던 주은래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던 어학의 천재라며 치켜세우지만, 그렇게 대단한 인재를 기껏해야 간첩으로밖에는 써먹지 못했던 북한도 한심하고, 본인의 기질이며 능력과는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명령을 따랐던 깐수 양반도 한심할 수밖에 없다. 염소 노려보기를 비롯해 황당한 냉전 시대 첩보 작전들에 버금가는 코미디가 아닌가!


백 번 양보해서 학술로야 칭찬할 수 있더라도, 과연 후세가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해 보면 살짝 민망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100년 뒤의 후손이라면 십중팔구 어이없다는 듯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지 않을까? '도대체 그 당시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눈이 나빴던 거야? 아무리 봐도 외모가 한국 사람인데, 어째서 아랍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거지?' 


어쩌면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중국 고사로 답변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렸는데, 가만 보니 이웃이 훔쳐간 것 같았다. 이웃의 행동을 살펴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딱 도둑놈 같았다. 그런데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도끼는 알고 보니 주인이 다른 곳에 놓아 두었을 뿐이었다. 그제야 다시 살펴보니 이웃의 행동은 전혀 도둑놈 같지 않았다.


결국 한국 사람 정수일을 아랍 사람 무함마드 깐수라고 사실상 전국민이 착각한 까닭은 '믿음'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보였던 것이며, 이후로는 달리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이 발동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일단 대학 교수라는 쉽지 않은 지위까지 꿰어찬 후에는 외모나 억양 같은 몇 가지 단서로 의심하기가 오히려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무함마드 깐수를 텔레비전에서 직접 봤던 나귀님 같은 사람의 입장일 뿐이니, 처음부터 단지 정수일로만 알던 젊은 세대에게나, 또는 더 미래의 세대에게는 또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다. 100년 뒤에 가서는 십중팔구 전청조 같은 유사 사칭 사건과 함께 옛날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즉 그냥 웃음거리로만 소비되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이 실제 간첩 사건을 각색한 희곡 <M. 나비>이다. 북경 주재 프랑스 외교관이 중국 여자와 사귀게 되어 아이까지 낳았고, 급기야 여자의 재촉으로 외교 서류를 빼돌리며 간첩질까지 하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사실 '남자'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프랑스 남자는 빈번히 성관계를 가졌는데도 정작 상대방이 '남자'임을 몰랐다고 전한다!


이런 착각이 가능했던 것은 문제의 중국 '여자'가 경극에서 여자 배역[旦]을 담당하는 남자 배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 만났을 때에는 프랑스 남자도 상대를 '남자'로 여겼지만, 그 '남자'가 자기는 사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남장 여자'라고 고백하며 평소에 숙달된 여자 연기까지 곁들이자, 프랑스 남자도 상대방을 '여자'라고 착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극작가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에서 동양 여자를 농락한 서양 남자와도 유사한 사고방식이 저 프랑스 외교관에게도 있었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거꾸로 서양 남자가 동양 여자에게 농락당한 셈이라고 바라본 듯하다. 그래서 <M. 나비>는 간첩 실화와 푸치니 오페라를 극중에 중첩시켜 "신사"(Monsieur)와 "부인"(Madame)이라는 "M."의 중의성을 드러낸다.


진부한 표현을 쓰자면, 프랑스 남자는 '오리엔탈리즘' 때문에 중국 남자를 여자로 착각했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서양인은 사실 양성애자였다니, 과연 그가 어디까지 알았고 어디부터 몰랐는지는 두고두고 이야깃감이 될 만하다. 짐작컨대 희곡과 영화가 망각된 후에도 그 이야기가 회자된다면, 깐수나 전청조처럼 그저 쓴웃음만 자아내서가 아닐까...




[*] <M. 나비>는 동인출판사에서 나온 영한대역본으로 읽었는데, 황당한 오역이 많아서 차라리 절판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간단히 몇 가지만 예로 들자면, "흙바닥(dirt floor)"을 "더러운 마룻바닥"으로, "그 말 취소할게요"(I take it back)를 "그 말을 되돌려드리죠"로, "외교신서사(courier)"를 "우편배달부"로, "바이에른"(Bavaria)을 "원시족"으로 오역하는 식이다. 심지어 2009년의 3쇄본이 여전히 이 지경이다! 차라리 예전 포도원에서 나온 박준용 번역본을 헌책방에서라도 구해 봐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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