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니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잇달아 내놓은 행정 명령 가운데 하나가 빨대에 관한 내용이라기에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환경 보호를 이유로 연방 정부에서 종이 빨대를 구입해서 사용하는 법령이 있었던 모양인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이 조치를 뒤집음으로써 예전처럼 그냥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의 조치를 일일이 뒤집으려는 속 좁은 행동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정책도 현실적으로 문제이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듯하니 그간 종이 빨대로 인해 짜증을 품었던 사람이 의외로 많았음을 짐작하게 된다. 물론 나귀님이야 애초에 종이고 플라스틱이고 빨대를 쓰지 않으니 잘 모르겠지만.


빨대 이야기가 나올 때면 문득 떠오르는 것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일화다. 집 대신 통 속에 들어가 살았다고도 전하니 무소유로 일관한 사람인데, 그래도 원래는 밥 빌어먹을 때 사용하는 그릇 하나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어떤 아이가 손에다가 물 받아 마시는 모습을 보고 '나는 바보였구나!'하고 탄식하며 그릇을 내버렸다던가.


물론 저 견유학자의 모범을 따라서 내일부터는 모두 컵 대신 손에 뜨거운 커피를 받아 마시자고 주장하려는 것이야 아니지만, 가끔은 사소한 편의를 위해 너무 많은 자원이 낭비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하면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컵부터 시작해서 빨대며 덮개며 슬리브까지 오만가지가 따라오니 말이다.


이건 좀 너무한다는 인식 때문인지 지난 정부에서도 플라스틱 포장재 규제가 생겨났는데, 뜻하지 않은 코로나 대유행을 겪으며 포장 배달이 늘어나자 결국 철회되었는지 지금은 모두 서슴없이 사용하는 듯하다. 그나마 남은 규제라고는 종이 빨대에 대한 것뿐인 듯한데, 이마저도 효용성 의문부터 갖가지 불편으로 원성이 높았으니 실패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환경 보호라는 명분이 뚜렷했더라도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초부터 고래는 놓아두고 피라미만 규제하는 식으로 방향을 잘못 잡았으니 위선 논란이 나온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 종이 빨대며 금속 빨대 같은 대용품을 들먹일 것 없이, 차라리 법정 스님의 가르침에 디오게네스의 일화까지 덧붙여 빨대 거부 운동을 펼쳤다면 또 어땠을까.


물론 가끔은 신박하고 재치 있는 대용품이 나오기도 하는데, 작년 김천의 김밥 축제에서 일회용 그릇 대신 뻥튀기에 음식을 담아준 것이 그러했다. 김밥이라는 음식의 특성 덕분이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그릇까지 싹싹 해치울 수 있어서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었다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물론 커피나 라면까지는 어렵겠지만 비슷한 시도가 쭉 지속되면 좋겠다.


그나저나 그릇까지 싹싹 해치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문득 <아이네이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트로이 전쟁의 여파로 고향을 떠나 타향을 헤매던 아이네이아스 일행은 새와 비슷한 괴물 하르피와 싸우는 과정에서 '너희의 방랑은 식탁까지 먹어 치우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섬뜩한 (중국 미식가에게도 쉽지 않을!) 예언을 듣고서 낙담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한 번은 식사를 하려는데 그릇이 없기에 김밥 축제마냥 빵을 깔고 음식을 올렸는데, 아이네이아스의 아들이 문득 '음식을 다 먹고 빵까지 다 먹으면 진짜 식탁까지 다 먹어치우는 셈'이라고 농담을 꺼냈다. 그 말에 아버지가 결국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깨닫게 되어서 오늘날의 이탈리아에 해당하는 바로 그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종이 빨대나 플라스틱 용기 대신 손바닥과 뻥튀기를 사용한다고 항상 부동산을 얻지는 못할 터이고, 사울처럼 나귀 대신 왕국을 얻거나, 레이첼호처럼 아들 대신 고아를 얻는다는 보장도 없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다만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플라스틱 식기가 없던 시절에도 음식 먹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니 신기한 느낌이 들어 해 보는 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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