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 출판사 이름을 가지고 시비를 걸기 시작했으니, 몇 년 전부터 또 하나 짜증났던 이야기를 해 보자면, 최근 들어 신생 소형 출판사가 늘어나면서 나귀님 눈에는 영 생소한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는데, 그중에서도 몇 군데는 이름이 어쩐지 서로 엇비슷해 보여 헛갈리더라는 거다.
특히나 고약한 것은 "00의 00"라는 형식의 출판사 이름인데, 그리 흔치 않을 듯하지만 의외로 여러 개이고, 표지 디자인이나 출판 성향까지도 엇비슷해 보이다 보니, 나귀님 입장에서는 더 혼동하기 쉬워 보인다. 바로 "사월의책", "오월의봄", "봄날의책", "남해의봄날"이라는 출판사이다.
우선 "사월의책"은 철학과 사회과학 위주로 간행하는 모양인데, 맨 먼저 생각나는 것은 당연히 "이반 일리치 전집"과 "악셀 호네트 선집"이다. 최근에 나귀님이 구입한 리처드 로티의 책도 여기서 나왔다. 물론 가장 유명한 책이라면 한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의 회고록이지만.













"오월의봄"도 철학과 사회과학 위주로 간행하다가 지금은 전자보다 후자에 더 열심인 듯한데, 하나같이 시의적인 내용이니 의외로 수명이 짧을 수 있어 보인다.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일레인 스캐리와 사라 아메드는 여전히 나오지만, 나귀님이 좋아하는 토니 주트 책이 절판이라니 아쉽다.



"봄날의책"은 문학 위주로 간행하는 모양인데, 요즘 들어서는 해외 여성 작가에 집중하는 모양이다. 마니, 아랍, 북극, 침묵 등 초기에 나온 깔끔한 표지의 기행 에세이 시리즈가 계속되기를 바랐던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이후의 행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출판사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남해의봄날"은 문학, 그중에서도 에세이 위주로 간행하는 모양인데, 특이하게도 경남 통영에 있는 지방 출판사라고 한다. 아쉽게도 나귀님 취향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듯 보여서 지금껏 구입한 책도 하나 없고, 아마 앞으로도 구입할 만한 책은 딱히 없을 듯하다. 그냥 헛갈리기만 할 뿐.





물론 앞서의 글에서 밝혔듯 閣, 館, 堂, 院, 社로 끝나는 옛날 출판사 이름도 항상 서로 구분하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역시나 앞서의 글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이름부터 진부한 데다가 출판 성향이나 표지 디자인 등에서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음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이쯤 되면 나귀님은 쌍팔년도에도 "창작과비평"과 "문학과지성"을 헛갈렸을 만한 사람이 아니냐는 의문도 일각에서 제기될 법한데,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도 종종 헛갈리곤 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학과지성" 특유의 책등 "빨간 띠"가 출판사의 정체성을 보완하는 중요한 장치였던 거다.
똑똑한 작가인 노라 에프런도 역시나 "00의 00"라는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영화 제목을 (다시 확인해 보니 <운명의 역전>이다!) 기억 못해 헤맨 적이 있었다고 썼었으니, 이건 단순히 지능이나 노년의 문제만이 아니라 애초의 제목 짓기 과정에서 창의성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 싶은 거다.
물론 출판사만 탓할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어제 우연히 네이버 연예 뉴스에서 최신 드라마 인기 순위를 확인해 보니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와 <모텔 캘리포니아>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창의성 부족은 비단 출판계뿐만이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만연한 현상이라고 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