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바깥양반이 TV에서 방영하는 양궁 예능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기에 나도 오며가며 띄엄띄엄 보게 되었다.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 중에서 이미 은퇴한 선수들을 불러내서 개인전을 펼친 다음, 아직 현역인 선수들까지 추가해서 단체전을 펼치는 구성이었다.


제목부터 "전설의 리그"이다 보니, 바깥양반은 김수녕 정도는 나와야 맞지 않겠나 생각한 모양이고, 나귀님은 김진호까지는 아니더라도 서향순 정도는 나와야 맞지 않겠나 생각했었는데, 결국 두 명 모두 나오지 않아서 아는 얼굴은 기보배와 안산(!)뿐이었다.


양궁의 특성상 실력보다는 실수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역시나 많았는데,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은퇴 선수들이 종종 체력 저하로 오발하는 부분이 긴장감을 주는 재미 요소였다. 물론 한편으로는 세월의 야속함을 실감하며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그런데 활과 화살 이야기가 나왔으니 언젠가 활집과 화살집의 옛날 명칭에 관해서 알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수년 전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을 차용한 "범 내려온다"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했을 때에 그 정확한 가사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뒤져본 까닭이었다.


얼핏 듣기에는 "동화 같은 앞다리에 천둥 같은 뒷다리로"라는 가사로 오해하기 쉬운 부분인데, <동편제 판소리 창본>(송순섭 & 전형대 편저, 한샘, 1991)에 나온 바에 따르면 정확하게는 "동개(筒介) 같은 뒷다리, 전동(箭筒) 같은 앞다리"(167쪽)라는 가사이다. 


동개(筒介, 또는 筒箇)는 "활과 화살을 넣어 등에 메는 기구"이고, 전동(箭筒, 또는 箭筩)은 "화살을 넣는 통"이라고 각주가 붙었는데, 모양으로 설명하자면 동개는 활의 모양[B]대로 넓고 납작한 "활집"[D]이고 전동은 원통형의 "화살통"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판소리에서 호랑이의 굵은 뒷다리(U) 모양과 가는 앞다리(V) 모양을 동개와 전동에 빗대어 그럴싸하게 비유했다고 할 수 있겠다. 판소리 사설은 워낙 천차만별이라 똑같은 "수궁가"라 해도 이 대목 자체가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에는 정확히 나왔다.


<동편제 판소리 창본>은 꽤 오래 전에 아현국민학교 앞 헌책방에서인가 구입한 책인데, 아마 나귀님이 처음으로 산 판소리 사설집이었을 것이다. 공편자 송순섭은 동편제에서 송만갑의 계보인 박봉술의 직제자이고 현재 무형문화재 "적벽가" 보유자라 한다. 


판소리 사설집은 이 책 외에 민중서관의 고전문학전집으로 나온 신재효 판본과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음반 가사집의 재간행 판본을 갖고 있다. 훗날 박이정에서 각종 이본을 총합한 시리즈도 내놓았던데, 탐은 나지만 분량이 너무 많아 아직 구입하지 못했다.


판소리며 민담이며 하는 구비문학 관계 자료를 한때 열심히 사 모았는데, 이제는 뭐가 있는지도 기억나지 않으니, 아무래도 헌책방에 도로 뱉어놓을 때가 된 것도 같다. <동편제 판소리 창본>은 중고 가격도 비싸던데, 차라리 이번 기회에 파는 게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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