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특급> 리메이크가 나온 1985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어메이징 스토리>라는 유사한 시리즈도 나왔다. 역시나 공포와 환상을 소재로 하는 단편 드라마로 우리나라에서는 비디오로 나왔다가 나중에 TV에서도 방영되었는데, 비록 2시즌에 그쳤지만 원래는 <어메이징 스토리>가 <환상특급> 리메이크보다 먼저였다고 한다.


여기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스필버그가 직접 감독하고 무명 시절의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미션"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기가 출격했다 돌아오는데, 하필 랜딩기어가 고장나서 동체 착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문제는 폭격기 하단의 기관총 포탑에 대원 한 명이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칙상으로야 한 명의 희생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맞지만, 조종사와 지휘관을 포함해 10여 명에 달하는 다른 대원들은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불가피한 죽음을 앞둔 포탑 속 대원은 흥분한 나머지 최면 비슷한 상태에서 평소의 특기대로 지금 자신의 가장 간절한 소원을 스케치북에 그림으로 그린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난다. 랜딩기어가 망가진 폭격기의 앞부분에 만화 그림체로 커다란 바퀴 두 개가 달린 것이다. 대원들은 눈을 의심하면서도 그 바퀴에 의존해 안전하게 착륙하고, 최면 비슷한 상태에 빠진 포탑 속 대원을 안전하게 구출한다. 그리고 대원이 정신을 차린 순간, 만화 바퀴가 사라지며 비행기가 털썩 주저앉는다.


그런데 나중에 <사냥개 탐정>의 원작자인 이나미 이쓰라의 단편집 <세인트 메리의 리본>을 읽다 보니, 거기 수록된 "보리밭 미션"이라는 단편의 내용이 앞에서 설명한 "미션" 에피소드의 내용과 똑같았다. 즉 전투 중에 고장으로 동체 착륙을 해야 하는 폭격기 하단의 포탑에 사람이 하나 갇혀서 뭔가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타니구치 지로의 만화 각색으로 처음 접했지만 결국 원작까지 찾아볼 정도로 좋은 인상을 받은 작가였는데, 이쯤 되면 표절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구글링해 보니 "동체 착륙하는 비행기 하단 포탑에 갇힌 사람"에 대한 일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크게 유행한 것으로,지금은 도시 전설 취급을 받는 듯하다.


즉 <어메이징 스토리>와 이나미 이쓰라 모두 같은 소재를 각색한 것은 맞지만, 양쪽 모두 이미 널리 알려진 일화를 재활용한 것이므로 굳이 표절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저 일본 소설가도 <어메이징 스토리>의 각색을 십중팔구 알고 있었겠지만, 그 일화의 매력 때문에라도 나름의 변주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사실은 지난 연말 일어난 여객기 참사에서도 동체 착륙 장면을 보자마자 "미션"과 "보리밭 미션"의 내용이 떠올랐었다. 두 가지 창작물 모두 기적적인 성공을 서술했지만, 현실은 그런 드라마나 소설 같지는 않아서 참담하게도 수많은 희생자가 생겨났다. 그런데 오늘은 여객기 화재 소식까지 전해지니 이건 또 무슨 노릇인가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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