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깥양반이 즐겨 보던 <틈만 나면>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시즌이 또다시 마무리된 모양이다. 유재석과 유연석이 게스트를 대동하고 사연 신청자의 틈새 시간에 찾아가서 간단한 게임으로 상품을 전달하는 내용인데, 지금은 실내에만 틀어박힌 <유퀴즈 온 더 블록>의 과거 진행 방식을 연상시킨 탓에 친밀감이 든 모양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게임에 걸린 상품을 소개할 때에 행운의 과자를 이용한다. 만두처럼 길쭉한 과자를 쪼개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가느다란 띠에 이런저런 격언과 조언이 적혀 있는 물건이다. 예전에 미국 드라마를 보면 중국 음식점의 후식으로 종종 등장했었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정통 중국 문화까지는 아닌 모양이다.
행운의 과자를 소재로 한 창작물이라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1980년대에 방영된 <환상특급>의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인 "불운의 쿠키"이다. 독설로 유명한 어느 신문의 음식 평론가가 어느 중국 음식점을 방문했는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식후에 내놓는 행운의 과자 속 쪽지에는 손님의 가까운 미래를 예언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예를 들어 "4월이니 좋은 소식 예감"이라는 쪽지를 꺼낸 주인공은 지금이 9월인데 말이 되느냐고 짜증을 내며 일어났지만, 다음날 우연히 길에서 만난 멋진 여성에게 도움을 주고 데이트 약속까지 하고 보니 그녀의 이름이 바로 '에이프릴'(4월)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주인공은 아예 그녀를 데리고 중국 음식점에 다시 찾아간다.
하지만 식후에 여자가 꺼낸 행운의 과자 속 쪽지에는 '사람을 가려 만나라'는 경고가, 남자가 꺼낸 행운의 과자 속 쪽지에는 '당신은 곧 죽는다'는 경고가 들어 있었다. 격분한 음식 평론가는 중국 음식점 직원의 멱살을 잡는 등 행패를 부리고, 의외의 모습에 상대방의 실체를 깨달은 여자는 재빨리 작별을 고하고 나가버린다.
그런데 씩씩대며 밤거리로 나온 음식 평론가는 몇 걸음 못 가서 어마어마한 허기를 느끼며 배를 움켜쥔다. 때마침 저 앞에는 처음 보는 을씨년스러운 느낌의 중국 음식점이 나타나고, 남자가 들어가자마자 직원이 등장해서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히고 음식 접시를 날라온다. 주인공은 허겁지겁 음식을 손으로 퍼먹기 시작한다.
잠시 후, 빈 접시가 수북이 쌓일 정도로 게걸스레 음식을 삼키던 주인공은 영 허기가 가라앉지 않는 것에 이상한 느낌을 받는데, 곧이어 직원이 가져온 행운의 과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서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라는 쪽지가 나온다. 음식이 계속 쌓이는 가운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구글링해 보니 "불운의 과자"는 <환상특급>의 첫 리메이크(1985-1989)에서 1시즌 14번째 에피소드였고, <프렌즈>에서 모니카 아빠로 출연한 엘리엇 굴드가 성미 고약한 음식 평론가 역을 맡았다. 레이 브래드버리 원작의 "엘리베이터"며, 스티븐 킹 원작의 "할머니"와 함께 특히나 기괴한 내용으로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그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하루아침에 언어가 달라진 세상에 떨어진 남자의 이야기인 "말장난"이다. 나중에는 다른 인물의 대사가 문장 대신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로 대체되는데, KBS 방영분에서도 그걸 그대로 옮기는 바람에 ('바닷물 굴러간다 프라이팬 자갈') 진짜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작품은 "어린이 동물원"이다. 하루 온종일 말다툼을 벌이는 부부가 딸의 학교 숙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린이 동물원에 함께 온다. 입구에서부터 보호자는 대기실에서 기다리시면 된다는 안내에 만족스러워하며 말다툼을 재개하던 부부였지만, 알고 보니 이 동물원은 무자격 부모를 가두고 길들이는 곳이었다!
마치 수족관을 연상시키는 동물원 안에는 수많은 무자격 부모들이 유리장 속에 갇혀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데,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부부는 당장 문을 열라고 아이에게 윽박지르는 반면, 들어온 지 한참이라 자기네 행동을 반성한 듯한 부부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면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맹세한다.
결국 아이는 다정한 목소리로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약속한 부부를 골라서 새로운 엄마아빠로 데려가고, 함께 왔던 친부모는 유리장 속에 갇힌 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한동안 무자격 부모의 아동 학대 뉴스가 나올 때마다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었던 에피소드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어린이 동물원" 에피소드를 감독한 사람이 로버트 다우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같은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 아들(주니어) 때문에 아버지(시니어)라는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데, 앞서 언급한 "말장난"에는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구글링 끝에 새삼스레 저 추억의 '미드'의 나이를 실감하게 되었다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