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는 개와 고양이 대학살에 대해 알아보려다 보니, 문득 <맹자>에서 양혜왕이 제물로 끌려가던 소를 딱하게 여겨 양으로 교체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양쪽 모두 생명인데도 한쪽은 중히 여기고 한쪽은 경히 여긴 셈이니,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동물 애호가들의 기본 입장과도 유사하다.
물론 <맹자>의 문맥에서는 값비싼 소를 저렴한 양으로 교체한 것을 놓고 인색하다는 소문이 퍼져 왕이 당황했다고만 나오며, 맹자 역시 왕의 측은지심은 인정하면서도 그처럼 좋은 의도가 좋은 정치라는 형태로 국가와 백성 같은 더 넓은 대상에게까지 적용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질책한다.
그러다가 <풍도의 길>에서도 이탁오가 <맹자>에 나오는 "백성이 우선, 사직이 다음, 군주가 마지막"이라는 구절을 가져다가 풍도를 평가했다는 설명이 나오기에, 정말 오랜만에 <맹자>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명문당 사서삼경 수록본으로 읽다가, 다시 책세상의 발췌본으로 읽었다.
앞에서 언급한 소와 양 일화의 주인공인 양혜왕과 맹자의 문답 내용에서는 전국 시대의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상당히 급진적인 민본주의가 나타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단적으로 맹자는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시종일관 왕을 다그치고, 심지어 역성혁명까지 옹호하는 판이니까.
나중에 가서는 군주가 천명을 받들어 나타난다는 사고방식이 확립되었지만, 맹자도 종종 언급하는 요순과 하은주 3대의 역사만 <사기> "본기"에서 살펴보아도 군주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경우는 별로 없었고, 무도한 군주를 무력으로 쫓아내는 역성혁명이 오히려 기본값이라고 볼 만하다.
잘못된 정치로 백성의 지지를 잃어버린 군주는 이미 군주라고 할 수 없으니 쫓아내도 무방하다는 상당히 과격한 주장을 맹자가 또 다른 군주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내놓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이전까지 역사적 선례로 미루어 쿠데타조차도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정치사를 연구한 소공권의 설명에 따르면, 맹자가 이처럼 파격적인 발언을 연이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전국 시대의 생활상이 이전보다 더 피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가 되든 간에 하루빨리 다툼이 끝나고 안정이 오기를 바란 까닭에 군주 앞에서 왕도 실천을 촉구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맹자의 민본주의를 현대의 민주주의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소공권의 설명이지만, 그래도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에게서 오늘날의 정치 제도와 맥이 닿는 듯한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게다가 최근의 정치 상황도 있고 하니 말이다.
물론 그토록 간절한 바람에도 맹자 역시 선배인 공자와 마찬가지로 등용되지는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후의 중국 역사도 비록 절대 군주가 통치하는 통일 국가가 생겨났다 사라지고, 역성혁명도 심심찮게 일어났지만 정작 두 사상가가 제시한 이상에는 한 번도 도달한 적이 없었으니.
그나저나 <맹자> 번역본에서 참고 자료로 추천한 소공권의 <중국정치사상사>를 오랜만에 다시 꺼내 뒤적이다 보니, 무려 1천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이전에 구입하자마자 발견했던 의아한 대목이 하나 기억났다. 강유위의 <대동서>를 해설하던 중에 진지함이 지나쳐서 낭패를 본 경우였다.
강유위는 <대동서>에서 국가 간의 병탄과 전쟁은 끝이 없으리라 지적하면서 중국보다 큰 세계, 또 세계보다 큰 우주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지구 너머에도 국가가 있을 터이니, "화성과 인류의 지구가 전쟁한다면 피가 수천만 리에 흐를 것이고 수천만 명이 죽을지 모른다"(1123쪽)고 썼다.
그런데 소공권은 어째서인지 이 대목에 다음과 같은 각주를 덧붙였다. "그것은 오해가 분명하다. 서양인들은 화성을 MARS라고 이름한다. 그것은 또 로마인이 전신(戰神)을 칭한 것이었다. 강유위는 그로 말미암아 화성에서 국토를 둘러싼 전쟁이 일어난다고 오해한 것일까."(1123쪽, 주 53)
하지만 강유위는 국가 간의 알력이 보편적임을 강조하기 위해, 가상의 행성인 화성과 실제의 행성인 지구의 전쟁을 상상해서 예시한 것뿐이다. 굳이 우주까지 갈 것도 없이, 문학 작품에 나오는 가상의 나라든지, 아니면 아예 허구의 나라를 예로 들어도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소공권의 문제는 비유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진지한 반론을 제기했다는 점인데,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개그를 치자 다큐로 받은' 격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런 오해의 흔적이 나중에도 수정되지 않고 원서에 남아 있다가 번역서로도 옮겨 왔으니 더욱 의아하다. 정말 아무도 몰랐던 걸까?
화성인이 나오는 소설로 가장 유명한 H. G. 웰스의 <우주전쟁>은 1898년에 간행되었고, 강유위의 <대동서>는 1901년에 완성되어 저자 사후 1935년에야 간행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웰스의 소설을 강유위가 생전에 직간접적으로 접해 보았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다.
물론 웰스 이전에도 천체 관측에서 비롯된 억측과 과장을 통해 화성인의 존재가 일반 대중의 뇌리에 통념으로 자리잡은 19세기의 유산일 수도 있고 말이다. 분명한 점은 소공권이 학자로서는 엄밀했을지 몰라도 상상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니, 새삼스레 사상가와 학자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